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 작가 Oct 12. 2022

10월 12일 김상준의 하루

코인 노래방

상준은 노래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노래를 즐겨 부르곤 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는 것을 좋아했고 만약 함께 갈 친구가 없으면 혼자라도 노래방에 갔다. 그의 가창력은 원래 끔찍했었다. 음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었고 음악적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라 음을 틀리는 경우도 많았다. 상준과 함께 노래방에 간 친구들은 그가 마이크를 잡지 않기를 원하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상준은 꾸준히 노래방에 갔고 점차 실력도 늘었다. 대학교에 가서는 보컬 학원을 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는 방법도 배웠다. 그가 가수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잘 부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학원까지 다니면서 자신의 노래 실력을 발전시켰다. 덕분에 언젠가부터 상준은 주변 사람들에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상준이 처음 들어간 회사의 부장은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꼰대 직장인이었다. 상준은 입사 첫날부터 회식에 끌려가야 했고 그 자리에서 부장은 상준에게 노래를 시켰다. 동료들은 억지로 노래를 시키는 부장 때문에 상준이 고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준은 이것을 기회로 삼았다. 그는 멋진 노래 대신 분위기를 띄우고 부장의 비위를 맞출 수 있는 곡을 골랐다. 상준은 노래를 부르면서 웃긴 춤까지 췄다. 부장은 그런 상준에게 호응했고 무거워질 수 있었던 회식 분위기는 축제의 장이 되었다. 그날 이후 부장은 회식 자리마다 상준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에게 노래를 시켰다. 상준은 매번 레퍼토리를 다르게 하면서 부장이 필요한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 대가로 부장은 상준을 계속 챙겨줬기 때문에 상준은 꽤나 편하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상준도 괜히 부장 라인을 탔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더 열심히 하려고 했고 성과도 냈다.

상준이라고 부장을 위한 재롱 잔치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준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던 상준은 억지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회식 날만 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사직서를 제출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상준은 자신이 좋아하던 노래방의 냄새까지 싫어졌다. 그에게 노래방은 더 이상 즐거운 취미 생활이 아니게 되었다. 그에게 노래방은 그저 역겨운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상준은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는 따로 노래방에 가지 않았다. 그는 회식 날만 아니면 더 이상 따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회사에서 영원한 권력을 누빌 것처럼 행동하던 부장은 비리가 드러나서 회사에서 쫓겨났다. 부장을 따르던 라인들도 좌천되었고 회사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상준은 아직 말단 직원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이제 더 이상 상준은 부장을 위해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었다. 그는 부장에게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상준은 노래방에 가질 않았다. 여전히 그는 노래방의 공기가 역겨웠고 그곳에 가면 부장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날 것 같았다. 가끔 상준의 옛 친구들이 그에게 노래방에 가자고 했지만 상준은 거절했다. 

그렇게 다시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20대 중반이었던 상준은 어느새 30대 중반이 되었다. 회사 생활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다고 쉬운 일도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하루가 갔다.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가서 퇴근하면 집에서 핸드폰만 하는 하루가 계속되었다. 상준은 자신의 삶이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른 취미를 가져서 조금의 변화를 주고 싶었다. 

처음에 상준은 복싱을 배웠다. 집 근처에 꽤나 유명한 체육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복싱은 상준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3개월 정도만 복싱을 다니고 상준은 다른 취미를 갖기로 했다. 다음 취미는 등산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걷는 것을 좋아하던 상준이었기에 등산은 그가 쉽게 흥미를 가질 수 있는 활동이었다. 그러나 주말마다 등산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것은 그에게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친구들은 등산을 즐기지 않았기에 그는 혼자 등산을 다녀야 했다. 동호회에 들어가는 것을 고려했지만 자신들보다 연령대가 높은 곳이라 상준은 쉽사리 그들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결국 상준은 등산도 3개월 정도 하려다가 그만뒀다.

그 이후로도 수많은 취미를 가지려 했지만 모두 상준의 취향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는 새로운 취미를 가지려는 노력까지 그만두게 되었다. 결국 상준은 쳇바퀴 같은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집에서 쉰다. 상준의 일상은 다시 그렇게 흘러갔다. 

2년 정도 지났을 무렵, 상준은 퇴근하다가 우연히 코인 노래방을 발견했다. 예전 같으면 노래방 냄새조차도 싫어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을 그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상준은 오랜만에 노래방에 들어갔다. 코인 노래방이었기에 혼자 들어가도 문제가 없는 곳이었다. 그는 노래방 기계를 한참 바라보더니 돈을 넣고 자신이 원하는 곡들을 선택해 불렀다. 그가 노래를 부른 것은 약 6년 만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상준은 학창 시절의 사진을 되찾았다. 몇 곡 부르고 나니 상준은 신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상준은 20곡 이상의 노래를 쉬지 않고 불렀다. 누구 하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상준은 상관하지 않았다. 상준은 그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행복했다. 

그 이후로 상준은 거의 매주 코인 노래방에 갔다.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라던가, 아니면 기분이 무척 좋은 날에도 그는 노래방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쳤다.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누구에게 아첨하기 위해서, 누구에게 내가 노래를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상준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는 그것에 만족했다. 그렇게 상준은 자신의 취미로 그의 오래된 취미를 선택했다. 

오늘도 상준은 퇴근하면서 자연스럽게 코인 노래방에 들렀다. 오늘은 특별한 기분이 들지 않는 하루였다. 그저 모든 것이 평범했던 하루, 상준은 그 평범함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어서 노래방에 왔다. 상준은 가장 자신 있는 노래를 먼저 선택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백 번도 부르던 그 노래. 상준은 목을 풀고 자신만을 위한 공연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전 17화 10월 11일 정병규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