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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 작가 Oct 17. 2022

10월 17일 민유석의 하루

아군 만들기

“유석 님 말이야. 요새 바쁘더라?”


“자기편 들어주는 사람 없으니 또 여기저기 정치질 하고 다니는 것 같더라.”


유석은 올해로 15년째 직장인이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가 그의 첫 직장이었고 그의 전부였다. 그는 다양한 성과를 냈지만 주변 사람들한테 신뢰를 받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인성적으로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주변에 욕을 먹으면서 회사에서 버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석은 자신의 상사들에게 아부를 잘 떨었기 때문에 그의 회사 생활은 어렵지 않게 유지될 수 있었다.

15년 차. 유석은 차장급이었다. 유석이 다니는 곳은 직급이 없는 곳을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석은 차장이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직급이 없다고는 하지만 부장 급부터는 이상하게 직급이 불리는 곳이었다. 유석은 하루빨리 자신이 부장의 자리에 오르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애매했다. 밑에서 일은 잘 하지만 그 이상으로 올라가기에는 어설픈 구석이 많았다. 무엇보다 부하 직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그의 약점으로 치부되어 왔다. 아무리 무능력한 상사라도 자긴 편은 있기 마련인데 유석은 그러지 못했다.

유석이 처음부터 자신의 편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인성이 문제이긴 했지만 그를 따르는 부류도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유석은 그들을 오히려 자신의 정치질에 이용하려고 했고 유석의 실체를 깨달은 직원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유석이 믿을 수 있는 구석은 자신의 상사들 뿐이었다. 무능력한 상사들은 자신의 성과까지 챙겨주는 유석을 예뻐했다. 그렇게 유석은 지난 세월을 살아왔다.

그러다가 새로 상무 자리에 오른 강현성은 유석을 자신의 라인이라 생각하고 그를 부장 자리에 올리려고 했다. 강현성은 회사의 실세 라인 중 하나였다. 무능하지만 겸손하고 배포 있는 리더십으로 부하 직원들과 상사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현성은 유석 덕분에 많은 성과를 이뤄냈기 때문에 그를 무척이나 아꼈다. 유석의 연차가 아직은 부족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현성은 그를 언젠가 부장으로 올리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현성도 유석이 회사 내에서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업무도 업무지만 너의 편을 만들어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이후 유석은 자신의 아군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부하 직원들에게 잘해주려고 하고 그들을 데리고 어떻게든 성과를 만들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석은 평소의 그로 돌아왔고 밑의 사람들은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유석이 어떤 상황인지를 확인한 현성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현성의 편에 선 송주명 부장은 ‘뭐하러 민유석한테 신경을 쓰십니까? 다른 좋은 사람들도 많습니다.’라며 은근슬쩍 유석을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유석은 주명에게도 잘 보이고는 있었지만 주명은 유석을 자신의 라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현성은 비교적 다루기 쉬운 유석이라는 카드를 선택하고 싶었지만 그를 좋지 않게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유석을 승진시키는 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한 달 후, 현성은 유석에게 ‘승진하기에는 아직 이르니 시간을 두고 보자’라고 말했다. 내심 자신의 승진을 기대하던 유석은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승진이 무산되자 유석은 생각을 달리 하기로 했다. 자신의 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이었다. 처음부터 잘 되는 것은 없었다. 사람들은 유석의 말을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경계했다. 그가 순수한 의도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호의적으로 유석을 대하지 않았다. 유석은 사람들의 태도에 굴욕감을 느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유석은 오늘도 아군 만들기에 전념했다. 일은 갈수록 많아지는데 회사 내 인간관계까지 신경 쓰려니 유석은 죽을 맛이었다. 유석은 며칠 전, 친구가 이직을 제안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유석은 이미 망할 데로 망해버린 지금 회사에서 좋아지는 것을 바라는 것보다 새로운 곳에서 아예 다르게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15년 차에 새로운 곳을 간다는 것도 그에게는 큰 모험이었다. 그에게는 지금 회사가 처음이었고 전부였다. 고민하던 유석은 다 집어치우고 다시 회사에서 아군 만들기라는 프로젝트에 집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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