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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남 Feb 24. 2017

'싱글 라이더'가 된 두 남녀의 사정

스포일러: 약함


 증권 회사 지점장 강재훈(이병헌)은 오로지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던 사내였다. 그는 자신의 고객뿐 아니라 친구 및 친척들에게 부실채권을 팔아넘기면서까지 승진에 목을 매달았으며, 편의를 위해 사랑하던 아내와 아들마저 영어 교육을 핑계 삼아 호주로 보냈다. 말하자면 그는 불가피하게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기보다 자처한 쪽에 더 가까웠다.


 지위와 재산에 눈이 멀어 자기 자신마저 잃어버린 채 지점장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증권 회사는 부실채권 사건으로 파산하고 재훈은 순식간에 길바닥에 나앉는다. 피해 고객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던 중 지점장이라는 타이틀의 무의미함을 깨닫지만 때는 이미 지인도 지위도 재산도 자기 자신도 모두 잃은 후였다. 남은 것은 아내와 아들뿐이었다.

호주를 떠도는 강재훈

 재훈은 돌연 호주로 떠나지만, 도착하고서도 아내의 가택으로 쉽사리 발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2년 가까이 전화로만 안부를 물어오던 아내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재훈은 창문 너머에서 의문의 남자와 다정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발견한다. 남자가 떠날 때까지 몇 시간 가량 주변을 배회하던 그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아내의 모습 앞에 또다시 주저한다. 아내의 연주는 그에게 불륜의 현장과도 비등한 작용을 한다. 그것은 재훈이 지난 2년 동안 잊고 지내던 것들 중의 하나였다.

회사 차림으로 끼니를 떼우는 강재훈, 무표정하게 반찬을 건네는 이수진

 몇 년 전 이수진(공효진)은 재훈을 만나고서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삶을 끝맺었다. 실력을 유지하기 위한 매일의 연습은 성가셨고, 아내로서 살아가는 수진에게 바이올린에 할애되는 시간은 사치스러웠다. 취미로 삼으라던 남편의 제안에 아랑곳 않고 애지중지하던 바이올린을 팔기 위해 다짐하던 순간 그녀는 자기 자신마저 잃었다. 나아가 수진은 세상으로부터의 완벽한 분리를 자처했다. 현관문이 바깥에서 열리지 않도록 함으로써 그녀는 남편의 그늘 내부에 숨어 세상을 외면했다. 그런 그녀에게 세상은 무섭고도 흉흉하게만 느껴졌다.


 영화에서 문은 재훈과 수진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재훈은 잠금쇠가 휘어져 닫히지 않는 문에서 과거의 아내를 회상하고, 수진 역시 그 문을 통해 지금의 남편을 연상한다. 내부와 외부를 분리하고 연결하는 문은 이야기의 전개에서 중요한 작용을 담당한다.


 호주에 거주하는 2년 동안 수진은 완벽하게 달라졌다. 문을 걸어 잠그기 바쁘던 그녀는 이제 문을 모두 열어놓고도 편안하게 잠드는 여자다. 꿈을 접어두고 아내로서 살아가던 그녀는 이제 오케스트라 면접을 위해 매일 밤 연습을 하는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녀의 변화 앞에 오로지 목표만을 바라보던 남자는 끝내 눈물을 흘린다.

면접을 위해 오페라하우스로 향하는 이수진

 그러니까 이 영화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두 남녀의 이야기다. 목표만을 추구하며 자신의 주변을 이용하던 재훈과, 가정(주변)을 위해 꿈(목표)을 포기한 수진은 각박하고 차갑고 시린 도심의 굴레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싱글 라이더'가 됨으로써 변화하기 시작한다. 재훈은 홀로 비행기에 오르고서 자신의 주변을 향해 다가가며, 수진은 홀로 버스에 오르고서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싱글 라이더>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서의 실현과 결실보다 홀로 남겨진 자들의 내면이다. 흔히 조명하는 것들을 조명하지 않음으로써 영화는 그저 잔잔하게 아우성치는 길을 택한다.


 또 한 명의 싱글 라이더 유진아(안소희)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이야기의 시작점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덕분에 이 영화는 일하는 남편과 내조하는 아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에서 이색적인 결말을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한다.


 재훈의 눈에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한 여자의 모습만이 비쳤다. 끝내 수진의 계획을 알지 못한 그는 그저 변해버린 낯선 아내의 모습에 분노하고 좌절할 뿐이다. 이 영화의 씁쓸함은 수진의 흔들림만을 목격하고 그녀의 계획은 끝내 보지 못한 재훈의 시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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