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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화나무 Jan 10. 2019

라디오스타박물관

사실은 라디오박물관

혹시 ‘지붕 없는 박물관 고을 창조도시’를 아는가?

영월군청 홈페이지(www.ywmuseum.com/portal/index.do)


이런 타이틀을 달고 있는 도시는 바로 강원도 영월군이다. 영월 관내에는 2018년 12월 현재 23개의 박물관이 있다. 이 숫자는 매년 증가 추세이지만 최근 몇 년간은 정체 중이다.
‘박물관 고을 창조도시’는 그냥 갖다 붙인 미사여구가 아니다. 영월군은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 특례법’에 따라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지정・고시한 박물관 특구이다. 어디는 복숭아 특구, 어디는 R&D 특구를 외칠 때 영월은 박물관을 찜한 것이다.
박물관에 관한 연재를 시작하면서 ‘박물관 도시’ 영월에 맨 먼저 들르는 것은 노력하는 자에 대한 일종의 경의라고 말하고 싶다.


영월군에는 한때 KBS 방송국이 있었다. 군 단위 행정구역 중에 공중파 방송국이 있는 지역은 영월이 유일했다.
물론 방송국은 지난 2004년에 문을 닫았다. 문 닫을 당시 방송물 자체 제작 비율이 1.1%로서 이 정도면 지역 방송국의 기능을 못한다고 판단한 거다. 
문을 닫은 지 올해로 14년, 옛 방송국 건물은 영월군에서 매입하여 지난 2015년부터 라디오스타박물관이 됐다.
박물관 건립의 계기는 한편의 영화다. 박중훈 안성기 주연의 라디오스타.
2006년에 개봉해서 160만 관객수를 기록했으니까 대히트를 하지는 못했다. 2006년이면 영화 ‘왕의 남자’와 ‘괴물’이 각각 관객 천만 명을 넘겼던 해였으니 숫자로 비교하면 더더욱 초라해진다.
그런데 영화 라디오스타는 평범한 흥행성적에 비해서는 훨씬 많은 얘깃거리를 남겼다. 비록 흥행영화는 아니었지만 대단히 인상적인 영화로 기억됐다. ‘작지만 큰’ 영화라고나 할까?

‘철없는 락가수’ 박중훈과 ‘속깊은 매니저’ 안성기 주연의 라디오스타 포스터(출처: 다음 영화)
영월읍내 영월맨션아파트 벽면의 라디오스타 벽화


우선 영화의 OST가 롱타임 히트곡 반열에 올랐다. 극중 가수왕 최곤(박중훈 粉)이 부른 ‘비와 당신’은 럼블피쉬를 비롯한 진짜 직업가수(?)들이 리메이크한 관계로, 많은 사람들이 박중훈의 노래가 OST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의 히트곡이 됐다.

https://www.youtube.com/watch?v=acdAWdnSKmE
영화 삽입곡도 하나같이 명곡들이다. 노브레인 ‘넌 내게 반했어’, 조용필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김추자 ‘빗속의 여인’, 시나위 ‘크게 라디오를 켜고’, 신중현 ‘미인’, 들국화 ‘돌고 돌고’, Buggles의 ‘video kill the radio star’ 등.


영화의 내용도 재미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스토리의 개연성이 시대 상황과 정확히 맞았다. 2006년경이면 성공과 부에 대한 국민 개개인의 욕망이 절정에 달했던 때이다. 이 시절이 더욱 천박했던 것은 패자에게는 기회조차 다시 돌아가지 않는 ‘승자독식’의 논리가 거의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 이런 욕망이 집단 히스테리로 분출되면서 그 다음해에 치러진 제17대 대통령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성공에 대한 욕망만큼이나 패배의 나락에 대한 불안을 함께 지니고 있던 시절, 이때 영화는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준다.
‘언제나 나를 최고라고 말해준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모두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언젠가는 내려올 수밖에 없는 ‘최고’의 자리, 그 자리에서 이미 내려와 이젠 더 이상 유명 스타가 아닌데도 여전히 나의 곁을 지켜주는 당신.
영화 속에서 박중훈은 생방송 라디오에다 대고 이렇게 울먹인다. 당연히 방송사고다.
‘천문대에서 별 볼 때 형이 그랬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 없다구, 와서 좀 비춰주라! 반짝반짝 광 좀 내보자. 형 내말 듣고 있어? 듣고 있으면 돌아와!’

영화 속 소소한 에피소드의 무대가 됐던 청록다방. 지금도 영업 중이다.


다방 레지, 무명 락밴드 등 중심에서 밀려났거나 여태껏 한 번도 중심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망은 없어 보이는 변방 인생들이 들려주는 나름의 사연.
영화 라디오스타는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와 천민자본주의의 전장에서 패한 루저들에게도 별빛을 비추는 영화이다.
영화가 이런 것을 의도한 것이 맞다면, 영화의 무대는 당연히 변방이어야 한다. 그렇게 선택된 변방이 바로 영월이다.
‘영월에는 아직도 별도의 세트를 세우지 않아도 70~80년대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장소가 널렸다.’
영월 출신의 지인이 언젠가 자기 고향을 이렇게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이런 영월이기에 영화 ‘라디오스타’의 배경으로는 그야말로 최적지였던 거다.
그래서 라디오스타는 영월 올로케 영화로 만들어졌다. 세트 연출이나 타 지역 이동 없이 영화의 모든 장면을 영월에서만 찍었다는 얘기다. 방송국(극중 MBS), 청록다방, 명동화원, 별마로천문대, 세탁소, 철물점, 중국집, 기차 철길 등 영화의 주요 장면에 등장하는 장소는 대부분 지금도 운영 중인 실제 그 장소이다. 영월 관광안내지도를 펼치면 이 장소들만 따로 모은 ‘라디오스타 촬영지’ 항목을 발견할 수 있다.


자 이제 박물관엘 들어가 보자.

KBS 영월지국을 리모델링한 라디오스타박물관. 영화에서는 MBS 로고가 붙어있다.


박물관은 별마로천문대가 있는 봉래산의 끝자락, 동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 공원이 함께 있는 아주 고즈넉한 장소라서 방송국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기업체의 작은 연수원 같은 느낌이다.
박물관 건물로서는 장단점이 뚜렷한 편이다. 영화 속의 바로 그 곳으로서 전시 내용에 그대로 부합하므로 상징성 면에서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다.
반면 전시 공간으로는 그리 좋은 곳이 못 된다. 방송국 건물의 뼈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서 사무 공간이라면 몰라도 전시 공간으로서는 관람동선이 복잡하며 옛날 건물이라 천장도 매우 낮다. 이 모든 것은 박물관으로서는 결격 요소다.
그래도 실내 공간이 아기자기하고 색조도 연한 파스텔톤이라 인물 사진을 찍으면 꽤 예쁜 배경이 잡힌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 파트로 구성돼 있다. 라디오의 역사와 추억, 영화 라디오스타 이야기, 라디오 관련 체험 코너.
첫 번째 공간은 라디오의 역사와,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그 시절 라디오의 추억에 관한 전시이다. 긴 벽면을 따라 연대표가 적혀 있고 자료 사진이 함께 걸려 있는 아주 전형적인 전시실의 형태이다.
최초의 라디오방송은 1906년이고 우리나라 최초는 1927년인데 이땐 일본어 방송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연표의 맞은편 벽면에는 라디오의 변천을 보여주는 실물 전시가 이어진다. 보면 누구나 ‘아하!’ 할 만한 라디오들을 많이도 모아 놨다. 오래된 집의 벽면 히터처럼 생긴 라디오, 커다란 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추는 라디오, 식빵 굽는 토스터같이 생긴 라디오 등등.
DJ 코너도 있다. 사실 라디오 하면 곧 DJ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몇 십 년씩 진행해온 장수 프로들을 소개하고 각 DJ들의 애장품도 전시하고 있다. KBS뿐만 아니라 강석, 박소현 등 타 방송국의 장수 DJ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다양한 라디오와 방송 소품을 모아 놓은 라디오 전시 코너


이어지는 라디오스타관은 박물관 내에서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영화의 명장면을 다시 볼 수 있고 OST를 감상할 수도 있는 그런 정도로서 전시 연출 면에서도 평범한 편이다.
박물관 이름은 라디오스타박물관이지만 영화 얘기는 그저 한 코너 정도에 불과하고 전시 내용으로 보면 라디오 박물관에 가깝다.

영화 라디오스타 검색 코너. 박물관 타이틀에 맞춘 구색 갖추기 수준이다.


2층 체험 코너로 올라가면 더 본격적인 라디오 박물관이 이어진다.
박물관의 체험 코너하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크로마키(합성영상)는 ‘당연히’ 있고, 뉴스나 단막극을 시연하고 준비된 영상물에 더빙을 해 볼 수 있는 녹음체험 코너도 준비돼 있다.
이상 세 곳의 전시 코너 외에 전시실 출구 지점에 한 코너가 부록처럼 더 준비돼 있다.
영월에 대해 소개하는 일종의 관광안내 코너. 이왕 만드는 박물관에 숟가락 하나 얹어서 우리 지역에 대해 홍보하고픈 충정이야 이해하지만…
아쉽게도 과유불급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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