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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하는 슬기 Mar 05. 2021

바리스타의 흔한 '직업병'

카페를 떠난 지 언 3년, 아직도 카페만 가면 설레는 한 사람의 이야기

나는 아직 작업실이 없다 보니 대부분 동네 카페에 가서 글을 쓴다. 특히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일주일에 적어도 4~5번은 카페로 출근을 한다. 그리고 예전에 회사 생활을 할 때는 카페에 더욱 자주 갔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 직전 커피 수혈을 위해 카페에 1번, 점심시간에 밥 먹고 1번, 이렇게 기본적으로 2번은 꼭 갔다. 그리고 워낙 커피를 좋아해서 해외여행을 하든 국내 여행을 하든 꼭 로컬 카페를 하루에 하나씩 가곤 했다.


이렇게 카페를 자주 가는 내가 무의식에 습관처럼 확인하는 것들이 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인테리어와 바(bar)의 위치와 테이블 배치를 본다. 그리고 메뉴판을 정독한다. 이건 주문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메뉴와 가격을 보기 위해서다. (난 거의 아메리카노 아니면 카페라테 둘 중 하나만 마신다.) 그다음, 주문을 하고 나서 바(bar) 안을 쓱 스캔한다. 바(bar) 내부에 동선이 어떤지, 커피 머신은 어느 브랜드를 쓰는지, 블렌더는 어느 제품을 쓰는지, 겉에 올려져 있는 시럽들은 어떤 제품을 쓰는지, 청결 상태는 어떤지 등을 본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정신을 차린다.

맞다. 이건 아직도 내가 갖고 있는 '직업병'이다.


아르바이트와 직원 시절을 포함해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한 기간이 약 4년, 그리고 카페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일한 기간이 2년. 어쩌다 보니 카페 현장과 카페 사업 분야에서 거의 6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특히 20대 후반에 일했던 곳은 회사 내에서 이제 막 카페 사업을 시작하는 시기였다. 그래서 거의 한 사람 당 맡은 업무가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야근은 기본이었고, 하루 안에도 일하는 장소가 사무실에서 물류창고로, 물류창고에서 카페로, 카페에서 거래처로 이렇게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었다.


덕분에 그때 나는 프랜차이즈 카페 사업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게 되었고, 또 실질적으로 하나의 카페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그 시작과 끝을 함께 하며 속속들이 배울 수 있었다. 그때는 하루하루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르게 바쁘게 일했다. 매일같이 크고 작은 사건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워낙 경쟁이 심한 카페 사업 분야라서 우리는 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말 절실하게 일을 했었다. 당시에 몸도 마음도 힘들긴 했지만 또 동시에 그때만큼 즐겁게 일했던 적도 없는 것 같다. 모두 다 같이 '내 사업'처럼 일했었으니까.


사실 세계 여행이라는 꿈 때문에 그 회사를 관둘 때 마음에 걸렸던 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중에는 '지금 하는 일이 재미있어서'라는 이유도 있었다. 원래부터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라는 직업도 좋아했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가지고 본사에 들어간 후 카페 사업을 배우면서 그 재미는 몇 배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세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 깊이 '언젠가 내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꿈을 품은 채로.


그리고 그 꿈이 더 커지게 됐던 계기는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면서부터였다. 우리나라보다 커피와 카페 문화가 더욱 발달해 있던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9개월 동안 일하면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던 커피에 대한 내 오만함이 와장창 깨졌기 때문이다. 그때 커피에 대해 다시 처음부터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미리 받아 놓은 호주 워홀 세컨드 비자로 1년 더 호주에서 바리스타를 하려고 했었다. 그 후에는 멜버른으로 가서 커피 전문 아카데미에 진학하려고 했었다.




호주 퍼스에서 내가 좋아하던 카페 중 한 곳.



하지만 우리의 아름다운 계획을 방해하는 사건들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당시 커피에 대한 내 마음은 확신에 가득 찼었고, 의지도 충만했었다. 그런데 몸이 말썽이었다. 그때 아팠던 이유야 말로 '직업병'이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손과 발이 퉁퉁 부어올라 거동 자체를 못하게 됐다. 지난 시간 동안 너무 힘든 매장에서 일하면서 그저 버티고 버텼던 게 빵 터져 버렸었다. 당시 작은 병원으로 시작해서 대형병원까지 갔었는데, 내 손의 X-ray 사진만을 보고도 모든 의사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한 질문이 있다.


"혹시 손 많이 쓰는 직업 오래 하셨어요?"



그리고는 내 이야기를 들은 의사 선생님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지어 마지막에 큰 병원의 주치의 선생님은 내게 화를 내셨다.

"환자분은 그 일 하시면 안 돼요. 몸이 못 버텨요. 앞으로 그일 하면 또다시 이렇게 아플 거예요. 절대 하지 마세요!"


고백하자면 그 이전에도 한번 크게 아팠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똑같은 이유였고, 그때 의사 선생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었다. 처음에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그때는 회복이 빨라서 그런지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몇 년 뒤, 똑같은 증상으로 몇 배나 더 심각하게 아파보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내 인생에서 '커피'를 지우게 됐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내 휴대폰 사친첩에는 커피 사진이 가득한 걸까.



그렇게 커피에 대해 완전히 손 놓고 마음을 접은 지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도 나는 왜 아직까지도 카페에 가면 예전에 일할 때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꼭 본사에서 나온 직원처럼, 아니면 꼭 카페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걸까.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내 의지'의해서가 아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의해 내 꿈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실패했거나 포기했던 것들 대부분은 냉정하게 '내 의지와 내 노력의 문제'였다고 결론을 지었었다.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지만 실패와 포기의 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때마다 아쉬운 건 다름 아닌 '나' 자신 스스로에 대해서였다.


사실 그래서 예전에 가장 바쁘고 힘들던 카페에서 더 악착같이 버텼던 것도 있다. 포기하고 나서 '더 할 수 있었던 내 모습'을 나중에 바라보는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바닥을 쳤어도 버텼다. 진심으로 내 일처럼, 내 사업처럼 온 마음과 체력을 다해 일했었다.


이런 과정 때문에 커피와 카페에 있어서 만큼은 온전히 '나의 의지와 노력'의 문제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신체적으로 아팠던 그때, 정신적으로도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그때 당시에는 이런 일이 왜 나한테 찾아오는지 억울하기만 했었다. 나는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왜 이렇게 꼬였을까 하는 생각뿐이 없었다. 그런데 그 힘든 시간을 피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직면해야 했던 그때, 나는 인생에서 가장 큰 것을 배웠다.


인생에서 찾아오는 시련과 고비는 꼭 어떤 원인이 있어서 내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동시에 그런 시련과 고비를 내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 과정이 인생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는 시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조금 더 알 것 같다. 내가 왜 이렇게 아직도 카페에 가면 설레는지, 그리고 아직도 커피를 만드는 누군가를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지를.

내게 커피라는 꿈은 단순히 한때 어쩔  없이 '놓아주었던 '이라기보다 놓아줌으로써 내게  많은 것을 '얻게   '이기 때문 아닐까.




앞으로 조금 더 오래 나는 새로운 카페에 갈 때마다 아니, 커피 향이 나는 어느 곳을 갈 때마다 설렐 것 같다.

그리고 남몰래 마음속 깊은 곳에 조용히 작은 카페를 짓고, 그 안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짓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올 것 같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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