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 쓴다고 삶이 달라질까. 달라진다.
'꿈'이라는 글자는 참 짧다. 단 한 글자이다. 그런데 이 한 글자 안에는 무수히 많은 명사, 형용사, 부사, 동사들이 살아 움직인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어떤 단어는 생을 다해 사라지기도 하고, 어떤 단어는 10년, 20년 동안 오래 살아 숨쉬기도 한다.
30대 중반인 나에게 물어본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 살아있는 네 꿈의 단어는 무엇이야?'
난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다.
바로, '글'이다.
'글'이라는 꿈을 품은 지는 오래됐다.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였던 것 같다. '작가'라는 직업적 꿈은 아니지만 늘 마음속 깊은 곳에 '글을 쓰며 살고 싶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다'라는 동사의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10대 소녀가 직업적 꿈이 아닌 동사의 꿈을 지키기란 쉽지 않았다.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며 내 꿈은 '00 대학교 입학', '1등급'과 같은 단어로 바뀌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대가 됐다. 10대의 딱딱한 꿈은 사라지고 20대 초중반의 내 꿈은 '여행'이었다.
그래서 난 27살에 퇴사를 하고 세계일주를 떠났다. 그 후에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꼬박 1년 7개월 동안 여행을 했는데도, 여행이 모자랐는지 1년 더 호주에서 살려고 했다. 잠시 한국에 들렀던 때였다. 서른을 코 앞에 둔 29살이 되던 해, 남들이 아홉수에 대해 말할 때 그런 게 어디 있냐며 콧방귀를 뀌었었다. 그 콧방귀가 괘씸했는지 내게 아홉수는 정통으로 찾아왔다.
문자 그대로 하루아침에 갑자기 발목, 팔목, 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어찌나 통증이 심하던지 피부만 스쳐도 자지러질 정도였다. 일상생활은 불가능했다. 대형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으니 체내 염증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져서 바로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앞으로 몇 개월 동안은 건강 회복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하셨다.
맞다. 내가 봐도 이 몸으로 다시 워홀, 여행을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상황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꿈을 먹고사는 사람에게 꿈을 빼앗아간다는 것은 먹이를 빼앗아 간 것이다. 몸도 아프고, 정신도 아팠다.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냈고, 혼자서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하기까지는 4~5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꿈을 이루고 있는 단어는 물론이고, '꿈'이라는 단어가 희미해졌었다. '난 무엇을 좋아하지? 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초 단위로 찾아오는 무거운 고민들은 날 질식시켜 버릴 것 같았다. 그때였다. 난 그 누구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글을 썼다. 처음에는 혼자만 보는 일기장에 악필로 마구마구 내 마음속에 있는 문장들을 꺼냈다. 그러고 나면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매일매일 글만 썼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에서는 스멀스멀 다시 '꿈'이라는 한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옆에는 '글을 쓰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두 문장이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늘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던 '글'이라는 내 꿈. 그 꿈이 이제야 찾아온 것이다.
그때 나는 카카오 브런치를 찾았다. 카카오 브런치는 글 잘 쓰는 사람들만 모이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라서 양질의 글들이 올라오는 플랫폼으로 익히 알려져 있었다. 브런치 오픈 초반에 작가 신청에 통과를 해서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은 주어졌었다.
일주일에 2~3번씩 꾸준히 썼다. 일주일, 하루의 일과 중 하나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었다. 이제 막 서른 살이 된 한 사람이 생각하는 인간관계와 연애에 대해, 세계 여행과 워홀을 하면서 느낀 점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렇게 글을 꾸준히 쓰니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브런치 앱과 브런치 PC 화면에 '추천 글'에 내 글이 뜨더니 나중에는 포털 사이트 다음 메인 글에 내 글이 올라갔다. 덕분에 난생처음 보는 조회수도 기록할 수 있었다.
그중 가장 크게 빵 터진 글은 '내 마음을 데리고 살 사람은 나다'라는 글이다. 이 글 하나에 9만 조회 수가 넘는다. 이 글로 인해 2~3일 만에 구독자가 600명이나 늘어나는 경험도 했다. 유튜브 하시는 분들이 말하길 하루에 천명, 만 명씩 쭉쭉 늘어난다고 듣기만 했었는데, 나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브런치에서 한 것이다.
글을 쓰는 일은 짧은 시간 내에 성취를 확인하기 어렵다. 하나 더해서 오랜 시간이 지난다 해도 어떤 성취가 돌아올지 모르는 아주 불확실한 일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글을 쓴다고 처음 마음을 먹었을 때, 스스로 가장 많이 걱정했던 것은 '지치는 마음'이었다.
취미가 아닌 글을 업으로 삼고 살아보니 제일 힘든 건 역시나 내 걱정대로 지치는 마음이었다. 이 지치는 마음에 가장 크게 자리한 것은 '외로움'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아주 컴컴한 곳에서 나 혼자만 손을 흔들고,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일이었다. 난 단 한 명이라도 내 손짓을, 내 목소리를 들어주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늘 그 어둠 속은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고 고요했다.
브런치는 꼭 내가 지쳐 있을 때마다 내게 손을 흔들어주고 목소리를 들려줬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네 글을 잘 읽고 있다고, 네 이야기를 잘 읽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항상 이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 넌 계속 이렇게 글을 써줘."
브런치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019년 8월 한 여름이었다. 2년 동안 일주일에 최소 2~3개의 글, 가끔은 1일 1 글 프로젝트를 하며 열정적으로 글을 썼다. 이후에는 그 정도로 글을 자주 올리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총 270개의 글을 브런치에서 발행했다.
어느덧 브런치에 글을 쓴 지 6년이 지났다. 브런치 덕분에 '글을 쓰며 살고 싶다'라는 꿈을 매 순간 이루며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브런치 덕분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다'라는 꿈을 이번에 이루게 됐다. 작년에 브런치 북으로 연재했던 <떠나면 달라질까>라는 글을 초안으로 삼아 이번연도 초부터 출판 기획서를 작성하고, 원고를 써 내려갔다.
원고 투고를 했던 한 출판사에서 내 글을 마음에 들어 하셨고, 6월 말에 출판 계약을 마쳤다. 현재 출판 작업은 마무리되어서 인쇄만을 남겨놓고 있다. 정식 출간일은 9월 24일로 잡혔다.
브런치에서 글 쓰면서 동사의 꿈만 이룬 것이 아니라, '작가'라는 직업적인 꿈까지 이루게 됐다.
글을 쓴 지 6년이 지났지만 글 앞에서 외롭지 않다고, 지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글 쓰는 일은 늘 외롭고, 늘 지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브런치를 찾게 된다.
꿈을 잃어 오갈 때 없던 나를 받아준 곳,
그렇게도 듣고 싶던 '작가님'이라고 나를 처음으로 불러준 곳,
마침내 실제로 나를 '작가'로 만들어준 곳.
바로, 카카오 브런치이다.
앞으로 펼쳐진 글이라는 꿈, 그 길은 넓고도 길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앞으로도 난 내 꿈의 길을 이곳, 브런치에서 걷고 싶다.
오랫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