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건 1]
어느 날, 첩보당국에서 위성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에는 본토로부터 150km 떨어진 적 기지에 탄도미사일 발사대가 건설 중인 모습이 담겨 있었다. 만약 그들이 핵탄두를 들여놓을 계획이라면 수천만의 시민이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첩보원들에 따르면 적국은 동맹국으로부터 해상으로 핵탄두를 인수받을 예정이었다.
대통령은 핵탄두 반입을 막기 위해 적국에 대한 해상 봉쇄를 명령했다. 일촉즉발의 대치 속에서 핵보유국 두 나라는 아슬아슬한 협상을 진행했다. 회담은 의미 있게 진척됐다. 양측 모두 서로의 수도를 겨냥한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기로 약속하면서 상황이 해제됐다.
[사건 2]
고요한 자정, 아군의 탄도탄 감시 기지에 사이렌이 울렸다. 조기경보 인공위성이 적 지역에서의 탄도탄 발사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미사일 수는 순식간에 다섯 기로 늘어났다. 수 분 안에 적의 핵미사일이 떨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대응할지 잠시 고민하던 그는 상부에 보고했다.
"컴퓨터 오류로 추정됩니다." 그의 말대로 미사일은 떨어지지 않았다. 몇 시간 뒤 상부에서 연락이 왔다. "인공위성이 햇빛을 미사일로 오인."
[사건 3]
1월 25일, 한 나라의 과학자들이 북극에 탐사용 로켓을 쏘아 올렸다. 공교롭게도 그 로켓은 적성국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예상되는 궤도와 거의 일치했다. 레이더 기지의 분석에 따르면 수 분 내에 수도 위로 미사일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전략 로켓 사령부가 곧바로 반격 태세에 돌입했다. 대통령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벙커로 들어갔다. 그렇게 그는 핵가방을 든 채 수 시간을 있어야 했다.
1962, 1983, 1995. 아슬아슬한 세 번의 위기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의 한 장면넷플릭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위의 사건들이 전부 실제였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사건 1]은 쿠바 미사일 위기, [사건 2]는 1983년 핵전쟁 위기, [사건 3]은 1995년 노르웨이 로켓 사건이다. 이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미사일 발사 결정을 내렸다면 지금의 지구는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사건의 당사자들이 침착함을 발휘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건 1]의 위기는 미국과 소련 정부가 협상의 끈을 놓지 않았기에 해결되었다. 당시 케네디 행정부는 쿠바에 대한 공습과 소련 정부와의 협상 사이에서 갈등했다. 정확히는 공격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는 백악관 참모들이 쿠바에 핵탄두를 반입하려는 소련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커티스 르메이 같은 군 장성들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온건파는 끝까지 케네디를 설득했다. 흐루시초프가 국내정치적으로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우리가 쿠바를 구해냈다'는 명분을 제공하면 미사일 기지 철수를 관철할 수 있다고 봤다. 그 판단은 정확했다.
이 일이 어떻게 인류의 운명을 갈랐는지는 1992년 피델 카스트로의 고백으로 드러났다. "우리는 미사일 위기가 벌어지기 한참 전에 이미 수십 개의 핵탄두를 반입한 상태였으며, 그것을 사용하라고 소련에게 권유했다."
[사건 2]의 위기는 당시 당직사령이었던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 중령의 판단으로 모면했다. 미사일 경보가 울릴 당시 그는 '핵공격을 감행했다면 왜 다섯 기의 미사일만 발사했지?'라는 의문을 품었다. 위성 경보 시스템의 불안정성도 이 의문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적의 전자전 공격이 있었다면 미사일 숫자가 더 많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더 확실해 보이는 쪽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의 판단이 옳았다. 만약 다른 결정을 내렸다면 소련이 미국에 선제 핵타격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건 3]은? 그 누구의 정치적 판단도, 이성적 사고와도 관련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그저 북극 연구를 하려는 과학자들이 있었고, 그것이 러시아를 자극하며 핵전쟁 위기로 비화됐다. 다행히 옐친 대통령은 핵가방을 열지 않았다. 이는 아주 어처구니없는 동기로도 핵전쟁이 벌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적 핵 딜레마를 한 데 응축한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핵전쟁 시나리오를 상정한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2025)는 위에서 말한 세 차례의 핵 위기와 그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군사적 딜레마를 모두 응축해 보여준다.
극동아시아 어디선가 발사된 탄도미사일이 갑자기 저고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험발사가 아니라 타격 목적이라는 의미다. 어디서, 누가 발사했는지는 모른다. 하필 그 지역을 촬영하던 정찰위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자전 시도일까? 알 수 없다. 1983년처럼 단순한 시스템 오류일까? 그것 역시 알 수 없다. 미사일이 여러 기일 가능성은? 마찬가지로 알 수 없다. 1962년처럼 적성국의 외교적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까? 그럴 단서조차 없다. 1995년처럼 단순 해프닝일 가능성은? 또는 불발일 가능성은? 이론상으로는 충분하다. 하지만 그것을 전제로 대응할 수는 없다.
수뇌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미국의 적성국들은 군대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에 대한 대대적 공격 준비인지, 미 본토에 핵폭탄이 떨어진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내린 경계 태세인지 판별할 수 없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러시아는 전폭기를 발진시켰다. 그러나 이 또한 그들이 범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
모든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미 행정부는 혼란에 빠진다. 대통령은 발사 주체도 파악하지 못한 채 적성국들에 대한 보복 여부를 고심한다. 백악관 상황실은 시카고 공무원들에게 대피령을 내리지만, 당사자들은 실제 상황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백악관 상황실의 올리비아 워커 대령(레베카 퍼거슨), 리드 베이커 국방장관(자레드 해리스), 그리고 대통령(이드리스 엘바)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의사결정 조직의 무력함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감독이 이러한 혼란상을 세밀하게 묘사한 이유는 '상호확증파괴'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으로 보인다. '공포의 균형'이라고 부르는 이 개념은, 핵전쟁이 벌어지면 즉시 적국이 핵 보복을 가해 결국 서로 파멸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를 통해 서로에 대한 전쟁 억지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상호확증파괴가 미친 짓인 이유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의 한 장면. (넷플릭스)
하지만 이는 이성적인 지도자들이 합리적 판단을 한다는 전제에서만 성립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광기에 사로잡힌 지도자가 충동적으로 핵미사일 버튼을 눌렀다면? 또는 발사 시스템의 오류였다면? 아니, 그 전에 이성적인 지도자의 합리적 판단이 핵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은 없을까? 1962년 쿠바에서처럼?
이는 핵무기라는 전략 자산의 효용성, 그 자체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핵 억지력은 말 그대로 전쟁 가능성에 대한 억제다. 문제는 실제로 핵미사일이 발사된 이후에는 어떤 억제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재래전은 발발 후에도 수습의 여지가 있는 반면, 핵전쟁은 버튼을 누르는 즉시 상호 파멸이다.
이러한 상호 파멸 개념은 과연 얼마나 전략적일 수 있을까? 핵미사일이 자국 국토에 떨어지는 순간 해당 국가의 존립 기반은 완전히 무너진다. 그 상황에서 적국을 핵미사일로 말살시키는 일은 과연 우리에게 이득일까? 이미 우리는 말살된 상태일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희생된 수천만 명에 대한 복수? 보복으로서 (이미 파멸한) 국가의 위신을 세우는 것? 무엇보다 핵전쟁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수만 개에 달하는 그 많은 핵무기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
영화 제목은 이 지점에서 명확해진다. 다이너마이트가 가득한 집. 집을 지키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잔뜩 쌓아놨지만, 그 때문에 아주 작은 불씨로도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릴 수 있다는 역설. 이미 내 집이 날아간 상황에서 남의 집을 날려버리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 이를 통해 감독은 상호확증파괴라는 개념이 얼마나 취약한 이론적 가정 위에 서 있는지 지적한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다는 논리의 함정
여기서 놀라운 건 캐서린 비글로 감독의 연출이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현실 묘사에 충실하다. 인류애나 반전주의는 전혀 담겨 있지 않다. 노골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감독은 오직 미 당국 내의 의사결정권자들을 조명하며 이 문제를 서술해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차라리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그녀의 주특기답게.
사실 비글로 감독은 전작인 <제로 다크 서티>를 통해 여러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해당 영화에서는 CIA(미 중앙정보국)가 9.11 테러의 주동자 오사마 빈 라덴을 찾아 죽이기 위해 테러리스트들을 고문하는 장면들이 자주 나온다.
자칫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메시지로 비춰질 소지가 있었다. 그러나 개봉 후에도 그녀는 문제의 장면에 대해 굳이 해명하려 들지 않았다. 이렇듯 힘의 논리를 부정하지 않는 그녀조차도 핵무기는 조심스럽다.
재밌게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 국방 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는 냉전 당시 핵무기를 통한 대량 보복 개념을 수립한 인물이다. 국제사회에서 힘이 곧 법이라고 주장하는 외교 현실주의자들에게도 핵무기는 이런 의미다.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파괴력. 거대한 불합리. 그리고 파멸.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정직한 군사령관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실수한 적이 있음을 인정할 겁니다. 불필요하게 사람을 죽인 것 말입니다. (...)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그 실수에서 배울 수 있다면, 그게 교훈인 것입니다. (...) 하지만 핵무기는 그럴 시간도 없지요. 한 번의 실수로 해당 국가는 전멸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에 의해 7,500개의 핵무기가 가동될 수 있다는 게 과연 적절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특히 그 중 2,500개는 15분 이내로 발사될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