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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다혜 Apr 02. 2020

식사 대신 프로틴 바를

책 <식사에 대한 생각>

주위를 보면 생각보다 세 끼 ‘식사’를 챙겨 먹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도 시험기간이라 바쁠 땐 학교 카페에서 빵과 커피로 대충 끼니를 해결한 때가 많았다. 또 학교 특성상 한 과목 수업을 나누지 않고 3시간씩 통째로 진행되는 형태라 하루에 2개의 수업, 즉 6시간 연달아 수업을 듣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이럴 때도 허기를 달래려고 프로틴 바와 커피로 끼니를 해결해왔다. 이땐 꽤나 간편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현대 사회가 얼마나 사람들의 식사시간을 망치고 있었는지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현대는 과거에 비해 얻을 수 있는 음식의 양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다. 그러나 양은 많아졌지만 사람들 식사의 질은 낮아졌다. 심지어 전 세계에서 전반적으로 가장 질 좋은 식단을 먹는 구각가 선진국이 아닌 아프리카 대륙,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의 저개발 지역에 몰려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 물론 질 좋은 식단이라고 해서 그들이 양껏 풍족하게 먹고 산다는 말은 아니었다.) 최근 전 세계적 규모로 발생한 입맛의 균질화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같은 종류의 식재료를 먹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인도의 커리를 먹거나 스리랑카에서 비빔밥을 먹는 등 우리는 이제 어디서는 세계의 음식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어떤 지역을 방문하면 그 지역만의 음식만을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젠 세계의 어딜 가도 비슷한 메뉴판을 볼 수 있다. 그저 요즘엔 다양한 요리를 먹을 수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니 좀 소름이 돋기도 하다.


또한 식품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퀴노아, 아보카도처럼 과거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식품들이 건강에 좋다고 알려지고 그에 대한 수요가 드러나면서 본고장에는 타격을 주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원래 퀴노아를 먹던 볼리비아 사람들이 퀴노아가 비싸져서 먹지 못하고 대신 값싼 인스턴트 면을 먹게 된다거나 아보카도의 수요 폭증으로 인해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이 아보카도 생산자들에게 세금을 걷기 시작했고 이를 거부하면 납치당하거나 공격당해서 멕시코에서는 ‘피 묻은 과카몰리’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 지구 한 편에서는 그저 새로운 음식의 즐거움에 취해있을 때 그 반대 편에서는 이런 역효과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아이러니하다. 때문에 언제나 세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고 나의 행동이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항상 생각해야겠다고 느꼈다. 또한 ‘저소득 소비자들이 고소득 소비자만큼 트렌드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식품 트렌드는 또 다른 형태의 문화적 배제가 될 수 있다. 식품 트렌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쁜 현대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즐거움과 건강을 모두 챙기며 규칙적인 식사를 할 수 있는가 같은 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눈을 돌리게 만든다는 것일 수 있다. ‘ 이 문장을 통해서 단순히 식품 트렌드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 마라탕이면 마라탕, 흑당이면 흑당 그저 유행에 우르르 몰려가는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태도이다.


예시로 인도의 사례가 많이 나오고, 그 설명 안에 인도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스리랑카가 너무 그리웠다. 스리랑카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어떤 식당이 있는지 몰라서 친구들이랑 골목길을 헤매다가 아무 커리집이나 들어간 적이 있었다. 힌두교 사람들이 하는 커리집이어서, 눈썹 가운데 ‘빈디’라고 하는 빨간 점을 찍은 점원들이 우릴 반갑게 맞았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이건 비건 커리라고 소개해줬고 몇 가지 추천해주는 걸 포장했었는데, 가격이 정말 말도 안 되게 700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고 정말 정말 맛있어서 또 가자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정말 인도나 스리랑카에 살면 비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맛있는 게 많아… 그리고, 비문학 책을 읽다 보면 어디서든 인도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엄청난 문명의 발상지이다. 인도 여행이 위험하다는 말이 정말 지겹게도 많지만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그래도 쫄보라 혼자는 못 가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꼭 가보고 싶다. 뜬금포지만 인도는 정말 매력적인 나라다.


다시 돌아와서, ‘간식’에 대한 챕터도 흥미로웠다. 친구들한테 점심시간에 밥 안 먹고 운동하러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그런가 보다. “ ’ 45분이 새로운 한 시간이다’라고 쓰여있는 포스터를 보았다. 바쁜 노동자들이 점심시간에 서둘러 초집중 운동을 끝낼 수 있다고 광고하는 포스터였다. 이제 점심시간은 식사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활동에 쓰이는 경우가 많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에게는 식사 시간보다 중요한 시간들이 너무 많아져서 오직 식사를 위한 시간을 빼놓지 않고, 지속적으로 간식을 먹으면서 허기를 달래는 식으로 살아간다는 게 이 챕터의 주된 내용이었다. 마치 내 대학생활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대학생 때 간식으로 연명하면서도 나름 건강을 챙기겠다면서 프로틴 바깥은 ‘건강에 좋아 보이는’ 간식을 선택하곤 했는데 역시 좋은 선택은 아니었구나 싶다. “건강간식은 건강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일반 간식보다 설탕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 건강 스낵은 간식 먹는 습관을 강화할 뿐이다. 건강하다는 이유로 간식을 끊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한다. 점차 스낵 화가 되어가면서 스낵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식생활의 핵심이 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식문화의 원인이자 결과. 이렇게 끊임없이 무언가 먹게 된다. 적막이 없으면 음악도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먹는 것을 멈추지 않고, 공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진정한 식사도 존재할 수 없다. … 식사는 휴식시간이고, 삶의 중심점을 제공했지만 스낵은 삶의 리듬을 파괴하며 하루 종일 거의 무한정으로 무언가를 먹게 만들었다. “ 요즘엔 간식 위주로 먹지 않고 오히려 간식을 안 먹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건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내 삶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라도 간식을 피해야겠다고 느꼈다.


한국의 ‘먹방’에 대한 챕터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난 단 한 번도 자의로 먹방을 본 적이 없었고 왜 보는지도 잘 모르겠는 사람이라 이 부분이 흥미로웠다. “먹방은 사람들이 음식에 대한 자신의 불안과 욕망을 자유롭게 고백할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먹는 이 세상에서, 음식을 끝없이 먹는 모습을 담은 이 영상들은 테이크아웃 피자를 먹는 나의 식사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 테이스티와 먹방의 성공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식사와 멀어졌는 지를 잘 보여준다.” 먹방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거나, 나도 그들처럼 끝없이 많이 먹고 싶다는 반응을 통해 생각해보면 그런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외식과 관련해서는 '이민자들이 에스닉 푸드를 파는 새로운 레스토랑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20세기 후반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외식을 즐길 수는 없어을 것이다. 현대 레스토랑의 성공은 이민에 관한 이야기이자 전 세계인들이 이주를 통해 서로 거주지를 바꾼 결과물이다. ‘라는 문장이 인상 깊었다. 그저 누군가 새로운 나라의 음식점을 세웠겠거니 생각만 했지 이민과 관련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마라탕 집과 조선족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외식을 넘어서 이젠 어플로 그 외식의 음식을 집으로 다시 불러들이게 되었는데 저자는 이를 ’어마어마한 포장 용기들, 누군가와 눈을 맞춰야 할 필요도 없이 클릭으로만 식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난 배달의 민족이니 요기 요니 그런 어플을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핸드폰에 어플이 깔려있지도 않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나가서 먹자 그게 귀찮으면 그냥 먹지 말자 주의인데, 스리랑카에서 잠시 살면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자주 시키는지 이해는 간다고 생각했다. 스리랑카는 횡단보도 같은 도로 인프라가 잘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일단 밖에 걸어 다닌다는 것 자체가 힘들고, 나가자마자 내가 원하는 음식점이 있어서 바로 사 올 수 있을 만큼 식당이 많지도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우버 이츠를 정말 많이 이용했다. 말 그대로 클릭 몇 번으로 집에 식사가 차려진다는 건 과하다 싶을 정도로 편리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기는 플라스틱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서는 항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배달음식을 안 먹는 생활을 하니 그런 마음 불편은 생기지 않았고, 더불어 플라스틱도 음식물 쓰레기도 생기지 않았다. 이렇게 지나치게 편리하게 음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제대로 된 요리와 식사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생각했다.


내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던 프로틴 바 관련 챕터도 있었다.‘프로틴 바는 이 시대의 수수께끼 중 하나다. 왜 설탕 바가 아니라 프로틴 바라고 불릴까? 식사에 수반되는 여러 복잡한 문제는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 벅찰 수 있다. 간편하게 대용식을 병에 담아 물을 타 먹으면 필요한 영양을 얻으면서도 이 모든 복잡한 문제에서 손을 뗄 수 있다. 식사 대용식은 놀라울 정도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굉장한 속도로 확산되는 중이다. 마치 인간을 위한 사료 같다. 그러나 비교대상을 정확히 해야 됨. 현대인들은 맛있는 요리 한 접시와 식사 대용 음료 사이에서 고르는 것이 아니라 기름지고 맛없고 비싼 점심과 식사 대용 음료 사이에서 선택하기 때문에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식사 경험이 얼마나 실망스러운 것인지를 깨닫게 함. 질 좋은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질 낮은 음식을 참을 수 없어서 차라리 이걸 먹는 것. 대체 음료에 대한 비판이 좋은 음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좋은 요리 대신 프로틴 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질 낮은 요리 대신 차라리 영양분이라도 있는 프로틴 바를 골랐다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나 또한 수업 사이에 빠르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건 질 낮은 패스트푸드 혹은 기름에 절어있는 과자 같은 것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걸 먹을 바에야 차라리 ‘프로틴’이라는 건강해 보이는 이름의 ‘건강식품’을 먹는 게 낫겠다고 선택한 것이 아니었나 반성했다.


책을 쭉 읽으면서 든 생각은 사람들이 처해있는 환경이 식사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체코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나 스리랑카에서 인턴을 할 땐 비건 음식을 구하기가 쉬워서 비건을 해볼까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동물성 재료가 안 들어간 음식을 찾기 너무 힘들고 비건 음식은 비싸서 금방 포기하게 된다. 사람들이 질 낮은 음식만 먹고 건강을 못 챙기는 건 그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는 오로지 개인의 욕망이나 요구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의 욕망조차 우리를 둘러싼 세계, 즉 우리가 공급받는 식품의 양과 가격, 광고를 통해 주입받는 음식 이야기에 따라 형성된다. 근처에 신선 식품을 파는 가게도 없고 점심에 사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곤 샌드위치와 자판기 과자밖에 없는 콜센터에 갇혀 일하고 있다면 …’ 이에 저자는 선택 설계를 하고 있는 나라들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정부가 그 중요성을 깨닫고 사람들의 환경을 바꾸는 것, 혹은 환경을 바꿀 수 있도록 조금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선택 설계’는 행동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로써 사람들이 더 건강한 선택을 하도록 환경을 디자인하는 것을 뜻한다. 칠레는 시리얼 박스에 캐릭터 없애고 어린이 식품에 경고 라벨 붙임 ‘경고: 칼로리 높음’ 등등 단순하면서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라벨을 붙였고, 그 결과 건강식품이라고 인식되어 온 제품에도 붙어 사람들이 특정 식품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등의 소비자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 남미에서 주로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브라질의 양양 지침, 멕시코의 가당 음료 세금은 소득 낮은 사람들의 음료 구매율을 줄이고 물의 구매를 높였다.’ 꼭 비건 음식이나 채소를 많이 배치하는 것뿐만 아니라 단순히 라벨을 부착하여 음료의 섭취를 줄이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 대신 물의 소비량을 높여 사람들의 건강을 어느 정도 보호해준다는 것이다.


내내 나는 지나치게 음식의 보이는 면에 집착하거나 건강, 쓰레기 걱정은 뒤로 미룬 채 한 달에 30번씩 배달음식을 시켜먹거나 비현실적인 양을 먹는 영상의 조회수가 폭발하는 등의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았는데, 영국인인 저자는 정작 한국이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좋은 예라고 말하고 있어 이 부분은 별로 공감되지 않았다. 물론 미국의 엄청난 패스트푸드에 비하면 한정식이 건강해 보일 수는 있으나 모든 한국인이 그렇게 먹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요리는 매일 하는 다짐과 사랑의 표현이다.’ 언젠가 취업을 하고 독립을 하게 되면 삼시 세 끼를 내가 요리해서 먹어야 하고 그게 의무적이고 귀찮은 일처럼 느껴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을 생각하면서, 귀찮다고 대충 영양가 없는 음식을 먹고 널브러지지 않고 매일 나에게 다짐을 하며 나 스스로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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