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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Jan 25. 2024

하위 1프로 아기를 키웁니다

“다시 한 번 재볼게요.”

줄자를 든 간호사가 갸우뚱하더니 아기 머리둘레를 다시 잰다. 

다시 재봐도 39센치. 영유아 검진이 끝나고 받은 결과지에는 ‘하위 1%’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아기를 작게 낳았다. 작게 낳고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흔히 하는 인사처럼 작게 낳아 크게 키우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를 크게 키우는 건 인사만큼 쉽지 않았다. 


생후 50일. 작게 태어났지만 알차게 먹던 아기의 성장그래프가 꺾였다. 일주일에 200그램씩 꾸준히 자라던 체중이 늘지 않았다. 1주가 지나고 2주가 지나도 그대로였다. 나중에는 옷 무게에까지 연연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평균 옷 무게가 200그램쯤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총 무게에서 200그램을 뺀 후 아기의 체중을 기록했지만, 이제는 옷 무게도 따로 잰다. 옷 무게가 10그램이라도 덜 나가면 안도하고, 더 나가면 좌절한다. 옷 무게가 190그램이든 220그램이든 아기의 체중에는 큰 변화가 없다. 


주는대로 꿀꺽꿀꺽 잘 받아 먹던 아기였다. 배부른 지도 모르고 먹다가 먹는 양을 이기지 못하고 토하기도 했다. 그러던 아기가 먹지 않고 애를 태웠다. 젖병을 문 지 얼마 되지 않아 혀를 굴리며 밀어내기를 여러 번. 한 번만 더 먹자며 달래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밤에 깨워 먹이고, 조금만 먹어도 칭찬해주고, 모유와 분유를 번갈아주고, 먹는 데 방해가 되는 시각자극이 없는 흰 벽을 바라보고 먹이기도 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매주 월요일, 심호흡을 하며 아기를 체중계에 올린다. 아기가 버둥거릴 때마다 소수점 뒷자리가 미세하게 달라진다. 계속해서 바뀌는 숫자를 따라 남편과 내 표정도 순식간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지만, 표정변화를 아기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린다. 부모의 불안을 아기에게까지 전염시키고 싶진 않다. 


모든 아기는 제 속도로 큰다고 했던가. 어느 날 갑자기 아기가 잘 먹기 시작했다. 큰 젖병 끝까지 분유를 채워줘도 더 달라며 울었다.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더디게나마 체중이 늘었고, 안심했다. 체중이 아닌 머리둘레가 문제가 될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아기 대천문이 좀 작네요. 대천문이 빨리 닫혀서 머리둘레가 작을 수 있어요. 두 달 후 접종 때 머리둘레를 다시 재보고, 그때도 안 늘었으면 큰 병원에 가보세요.”

검진 후, 의사는 두 달을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부모가 그냥 둔 탓에 두 달 동안 아기가 못 자라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두 번째로 찾아간 소아과 의사는 흔쾌히 진료의뢰서를 써주었다. 

“지난 번에 왔을 때도 대천문이 작은 편이었어요. 측정결과가 하위 1프로면 큰 병원에 가서 원인을 알아보는 게 좋죠.”

집 근처 대학병원에서 가장 빠른 날짜에 예약을 잡았다. 


“아기가 예정일보다 얼마나 일찍 나왔죠?”

“18일 일찍 나왔어요.”

“출산일을 기준으로 하면 1프로에도 못 미치고요. 예정일을 기준으로 하면 1프로 경계에 걸쳐 있어요.”

결과는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아기의 머리뼈는 돌 전까지 열려 있는 상태다. 머리뼈가 열려 있어야 뇌가 성장할 수 있다. 머리둘레가 작다는 게 어른에게는 자랑일 수 있지만, 아에게는 심각한 문제일 수 있는 이유다. 머리뼈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를 기다렸다. 


“머리뼈 사이사이에 틈이 보이시죠? 머리뼈는 잘 열려 있네요. 그런데 머리둘레가 너무 작긴 해서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해요. 여긴 신경외과고, 신경내과에서 뇌가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제가 신경내과에 의뢰해둘게요.”

신경내과엔 대기환자가 많아, 두 달 반을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직 CT나 MRI를 찍기는 조심스러운 연령대라 발달상태를 주로 보게 될 거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아기를 바닥에 눕혔다. 아기의 한 쪽 다리를 잡고 반대편으로 넘겼다. 이렇게 여러 번 해주면 아기가 뒤집기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다음 날, 손주를 보러 온 친정 엄마에게 뒤집기라는 특별 미션을 주었다. 엄마가 와서 긴장이 풀렸는지 한숨 푹 자고 일어났는데, 아기가 거실에서 쉴 새 없이 뒤집기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표 특훈이 통했다. 이 시기 발달에서 중요하다는 뒤집기를 했으니 한 시름 놓아도 되는 걸까. 


그럴 리가. 조금이나마 늘고 있던 체중이 다시 멈췄다. 넘칠만큼 많이 먹는데도 살이 안 찌다니. 다시 찾아간 소아과에서 의사는 이유식을 좀 더 일찍 시작해볼 것을 권했다. 그 날로 이유식 재료를 잔뜩 사들이고 레시피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마지막 동앗줄을 잡는 심정이었다. 


오랜만에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아기 잘 크지?”

울컥했다. ‘잘 지내?’ 같은 일상적인 인사일 뿐인데,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잘 먹는데 안 커요.”

눈치 빠른 선배는 담담한 말투에 숨긴 떨리는 마음을 금세 알아챘다. 

“키워보니까 진짜 안 클 때가 있더라. 걱정하지마. 잘 클 거야.”

“잘 클까요?”

“그럼.”


아기가 잠든 밤, 침대에 누워 남편에게 묻다. 

“잘 크고 있는 걸까?”

“잘 클까?”

“안 크면 어떡하지?”

남편에게선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자고 있나 싶어 뒤를 돌아보니,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그도 자신에게 나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중이다. 우리에겐 고민할 시간이 얼마 없다. 내일은 내일의 육아가 기다리고 있기에. 서둘러 눈을 감으면서 다시 생각한다. 내일은 아기가 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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