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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Feb 20. 2017

걸어 다니는 후회 인간

좋은 선택이란 무엇일까

  나는 걸어 다니는 후회 인간이다. 


이것이 무어냐 하면 툭하면 후회를 해서 요즘 나 자신에게 붙인 별명이다. 딱히 잘못이나 실수를 해서 후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선택에 대한 이유 없는 아쉬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식당에 들어가도 주문을 하는 순간 후회를 한다. 아, 저걸 말고 이걸 먹을걸 그랬나? 이것이 심히 병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가령 문자를 보낼 때에도 이모티콘을 넣을지 안 넣을 지도 고민하다가 결국 할 말을 하고 난 뒤 끝에 점만 찍어서 보내면, 아 냉소적인 인간으로 보이는 건 아닌 건지 하며 한동안 찝찝함을 안고 있다.


완벽을 찾고 싶었을까


일어나자마자 '오늘은 분홍색 맨투맨을 입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외출 하기 직전에 하늘색 줄무늬 셔츠로 옷을 갈아입고 나가면 그 날은 온통 머릿속에 분홍색 맨투맨만 생각난다. 아 역시나 오늘은 그걸 입고 돌아다녔어야 했어, 하면서.


약속도 마찬가지다. 그날은 분명 이 사람과의 행복한 하루를 보낼 작정으로 기분 좋게 시간과 날짜를 잡고 난 뒤 막상 당일이 되면 그 누구도 만나기 싫은 날로 바뀌어버린다. 참 희한한 감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지는 않는다. 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후회 인간으로 변신하여 집안을 어슬렁 거릴 뿐이다.


아직도 내가 이러는 까닭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소한 것에 의심을 하고 후회를 하는 이상한 질병, 그거 고쳐줄 수 있는 병원 없을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자신감이 없어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따뜻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영화감독이 꿈이고, 현재도 영화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소통이 되어야 하는 것이 우선순위인데 그런 문제에 있어서는 내겐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때론 즐기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난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지?


유독 사소한 것에 대한 완벽해지고 싶은 집착이 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뭘 해도 아쉬움이 있고, 다른 선택에 대한 갈망이 존재한다. 너무 완벽해지고 싶은 것에 대한 욕심인 것일까?


내 선택에 대한 오류창이 뜰까 봐


컴퓨터를 하다가 오류창이 뜨면 어찌 됐든 '아 안되는구나'하며 다른 경로를 선택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모니터 밖으로 입체적으로 튀어나와서 나를 해치는 것도 아니고, 잘 몰라서 그런 거니 이 방향이 아님을 살짝 '경고'를 줄 뿐이다. 하지만 오류창이 뜨는 것조차 두려워하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듯하다. 나의 선택에 대한 불행한 대가를 받게 될까 봐, 혹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까 봐 아쉬움이라는 뜨거운 바람이 콧등부터 스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기 까지도 참 힘든 법인데, 그 선택의 결과까지 좋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인 것 같다. 돈까스를 먹으나 김치찌개를 먹으나, 맛이 없으면 다음에 다른 것을 먹으면 되는 것이고 내 선택에 대한 약간의 오류가 있을 지라도 다음 기회에 다른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인데, 결론부터 '역시나 잘못된 것일까'라고 단정 지어버리니 부정적인 기운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실제로 단 한 번도 내 선택에 대한 오류로 인해 끔찍할 만큼의 불행한 결과를
받은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결국 상황에 따라 다른 해결책을 찾아내고, 금세 잊히곤 하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참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후회를 하게 된다.


언제쯤 내가 후회 인간에서 벗어날지는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아침 9시에 일어나야 하는 것을 11시에 일어난 것에 대한 후회가 살짝 오려고 하는데, 가끔 나라는 인간은 스스로 참 피곤하게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선택의 문으로 들어오는 순간, 펼쳐지는 다양한 감정들


너, 그거 엄청 완벽하진 않은데
나름 괜찮은 선택이야


  좋은 선택이란 참 알 수 없고 어려운 것이다. 마치 인쇄를 하기 전에 미리보기 기능을 눌러서 어떻게 출력될 지한 눈에 볼 수 있는 것처럼 선택에 대한 결과를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않은가? 큰 그림을 미리 보고,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는 것을 반복하여 완벽에 가까운 출력물을 얻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삶은 버튼 한 번으로 앞날을 미리 볼 수가 없다. 일단 닫혀 있는 문을 두드리고 열어야 그곳에 우주가 펼쳐질지, 아니면 딱딱한 시멘트 바닥일지는 열어봐야 아는 것이고 경험해봐야 느끼는 것이다.


뻔한 말이지만 좋은 기회를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날려버렸다 한들, 빛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다음 기회에 더 좋은 순간이 분명 찾아오게 되어있다. 


그리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느껴지는 많은 교훈들이 살아 가는데 있어서 큰 중심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오류 투성이었던 선택은 다소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그로 인해 다른 걸 얻었으리라고. 

가만히 잘 생각해보면 그 안에도 나름 괜찮은 장점이 있으리라고 제안해본다.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최영미

yeoulha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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