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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라든 귤

by 여미

멀쩡한 귤을 상온에서 오래 두면 딱딱하게 굳으면서 점점 조그맣게 쪼그라든다.

요즘 내 마음이 그러하다. 한번 쪼그라든 마음은 좀처럼 다시 펴지지 않는다. 뭘 해도 자신감이 생기지 않고, 사소한 말에도 쉽게 상처받는다. 세상만사 괴로운 일들만 가득한 것 같아 슬프다. 가장 친한 친구의 사소한 농담에 기분 상하지만 냉동 꽁치 마냥 쪼잔 해 보일까 봐 말을 못 하여서 슬프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에게 털끝만큼의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슬프고, 어느 이의 굳은 표정을 보면 이유 없이 나를 오해하고 싫어하는 것만 같아 슬프다. 불교 사상 중에 이런 말이 있다.


태어난다는 것은 괴로움이고, 늙어가는 것도, 병듦도, 죽음도, 미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욕심을 채우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간의 마음 또한 괴로움이다

ㅡ 구사 나기 류슌의 '반응하지 않는 연습'


한 마디로 말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괴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면’이라는 것은 참으로 큰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타인의 마음이 언제나 나와 일치할 수는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은 원치 않을 수도 있고, 나의 생각이 언제나 옳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의 일들을 미리 알고 대비를 한다 한들 원치 않은 상황은 분명 생길 것이며, 상대방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생긴다고 한들, 내가 상상한 결과가 아니면 어차피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뭘 어떻게 하든 매 순간 괴로움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내가 생각하던 사람이 전혀 아니었음을 마침내 인정하면 검은 수령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내 상처와 흉터를 마주하면서 도리어 강해진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습니다.

ㅡ 파울로 코엘료의 '스파이'


내가 틀릴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쪼그라진 마음은 좀처럼 쉽게 원상 복귀가 되지 않는다. 그러한 고난을 분명 이겨냈을 적도 있었고,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그 상처가 저절로 무뎌진 적도 있다. 그렇게 많은 상처들과 마주하고 싸우고 비로소 현재 강해졌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무방비상태의 나로 다시 돌아온다. 사소한 것에 늘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나 자신을 보면 아직 까지도 나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다. 좁쌀 같이 작은 마음을 가진 내 탓인 건지, 원래 정신력이 강하지 못한 것인지, 세심하고 예민한 성격 탓인 지, 이 모든 것이 조화롭게 합쳐진 것일 수도 있겠다.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만 있는 것 같은데 왜 나라는 인간은 단 한순간도 바람처럼 지나갈 날이 없을까, 하며 한숨을 쉰다.


내 상처에 대해 말을 걸어 보면 어떨까?


거기 잘 지내고 있냐는 말과 함께 미안하지만 나는 앞날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너를 껴안고 괴로워하기에는 내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고, 문득 생각이 날 때마다 안부를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따뜻한 햇살만으로 꽃은 피어나지 않는다. 가끔은 몇 방울의 빗방울이, 바람이, 약간의 먼지가, 거친 흙이, 나를 더 단단하고 찬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글 여미

커버사진 여미


(*해당 글은 2017년에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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