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지영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항상 비싸보이는 옷만 입고 다녔고, 금색 귀걸이에, 금색 머리를 염색하고 다녔다. 저 집은 얼마나 부자길래, 저렇게 딸내미를 예쁘게 꾸며놓고 학교에 보낼까 싶었다. 늘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부러웠다. 나는 엄마한테 옷 한 벌 사달라고 하려면 생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저 친구는 매일이 생일인 것 같아 보였다. 집이 부유하면, 그녀의 일상도 매일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은중과 상연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은중이는 부잣집 딸내미 상연이를 부러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드라마에서의 포인트는,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느끼는 질투와 열등감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 지를 깨닫게 되는 두 여성의 성장 스토리다. 너무 밉지만, 또 애정하는 사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사람. 나를 파괴하기도 하지만, 나를 웃게 하는 사람.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고, 그 시간들을 지나왔고,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이 드라마는 평범하지 않고 소중하고 특별하다. 인간이라면 한 번쯤 느껴봤을, 가장 친한 친구 사이에서의 긴장감과 우정 사이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다. 결국에는 가난한 사람만 부자를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도 사랑이 많은 사람을 부러워한다는 것.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서 흐르는 결핍에 대한 감정들을 들춰보며, 우리 모두가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를 담는다.
지영이도 그랬다. 내가 제일 부러워했던 사람. 이 친구만은 나와 다르게 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같은 반 친구를 매일매일 동경하다가, 어느 날 어떤 용기가 생겼는지, 주말에 뜬금없이 지영이 집에 전화를 걸었다. 이 화창한 날씨의 토요일, 지영이는 과연 무엇을 할까?라는 궁금증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 나는 이렇게 심심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이 친구는 왠지 화려하고 재미있게 보내고 있을 것만 같아서 궁금했다. 잘은 기억은 안 나지만, 난 결국 그날 말도 별로 나눠보지 않는 지영이의 집으로 놀러 갔고, 지영이는 내가 생각했던 삶과는 아예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표정이 어둡고 무서워 보였던 지영이의 가족들이 나를 맞이했고, 지영이는 숨죽여서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 화창한 토요일에, 지영이는, 엄마가 내려준 숙제를 묵묵히 하고 있었다. 숙제를 다 하면 같이 게임을 하자면서, 30분 정도 기다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눈치를 보면서 지영이 집에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내가 그렇게 부러워했던 누군가의 삶은, 생각보다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왜 타인의 삶을 질투하고 부러워하는가?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 그것이 삐뚤삐뚤하게 확장되어 소유하고 싶은 감정까지 되어 질투가 된다. 아주 작은 단면을 보고, 그의 모든 삶을 논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쁨은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지만, 누군가의 슬픔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알기 어렵다. 그의 내면 속 깊은 곳에 있는 결핍과 슬픔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타인의 삶이 어떤지는 직접 살아보지 않고는 영원히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결국에는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삶을 직시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가장 의미롭다.
글 여미
커버사진 넷플릭스 제공 "은중과 상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