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멍청하고 쓸데없고 이상한 꿈을 정말 자주 꾼다.
평소에 단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인물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뜬금없이 나와서 나를 기쁘게 하거나 혹은 지독하게 괴롭게 한다. 요즘 들어 무의식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이것은 나의 깊은 내면이 말하는 '진짜 목소리'일까, 아니면 단순 '개꿈' 이려나, 의심해 본다. 오늘은 두 가지의 꿈을 꾸었다. 첫 번째 꿈은, 오래전에 나와 멀어진 친구와 화해하는 꿈을 꾸었다. 이 친구와 화해는 꿈속에서만 아마 3478429번 한 것 같다. 내 모자람에 우리는 멀어졌고, 서로를 용서하지 못한 채 방치됐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후회와 미련이 남은 쪽은 내 쪽이 컸던 탓인지, 꿈속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꿈속의 주제, 꿈속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들, 이 모든 것들의 흐름은 항상 똑같다.
내가 너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너라는 소중한 존재를 보물처럼 대하지 못하고 무례하게 대했던 과거의 나를, 내가 얼마나 후회를 하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못난 사람이었고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 너에게 설명하고 또 설명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너는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괜찮다고 웃으면서 나를 안아준다. 우리는 다시 친구가 된다. 매일 같은 스토리다. 오늘도 꿈속에서 그 친구가 나왔고, 우리는 다시 친구가 되었다. 그때 얼마나 행복했으면, 꿈에서 깨어났을 때도 기분이 좋았다. 행복했던 것 같다. 그렇게 첫 번째 꿈을 꾸고 잠깐 눈을 뜬 뒤, 꿈이라는 사실에 실망감을 느낀 채, 다시 잠에 들었다.
두 번째 꿈은 만화 스펀지밥에 나왔던 '별가'라는 별가사리 뚱땡이 캐릭터가 나왔다. 어느 화장실에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그 안에 별가가 있었다. 별가가 나를 빤히 보더니 손으로 내 머리통을 아주 세게 후려쳤다. 이 자식이 가만히 있는 나를 때리길래 나도 열이 받아서 별가를 때리려고 다가갔는데, 별가는 나를 힘으로 제압하더니 또 두들겨 팼다. 꿈속의 별가는 전혀 말랑말랑하지 않았고, 단단한 무쇠주먹이었다. 진짜 이놈은 기가 막히게 힘이 셌다. 내가 너무 아파서 쓰러졌는데, 마지막에는 내 목을 졸랐다. 무슨 정신 나간 살인범 같았다. 살다 살다 만화 캐릭터한테 나는 이렇게 삶을 마감하는구나, 싶었을 때 눈이 떠졌다. 진짜 이상하고 괴상한 꿈이었다.
남편과 아침밥을 먹으면서 첫 번째 꿈은 너무 속상하니 말하지 않았고, 두 번째 꿈만 말했다.
- 스펀지밥에 나오는 별가라고 알아?
- 응, 알지
- 오늘 꿈에서 별가가 나왔는데 걔가 나 때렸어
- 때렸다고?
- 응 화장실에서 만났는데 내 머리통 때리고 목도 졸랐어. 나 죽을뻔했어
그렇게 남편한테 조잘조잘 만화 캐릭터 따위한테 얻어터진 이야기를 했다. 오후에는 남편과 외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인형 뽑기 가게에 들어갔다. 원래는 할 생각은 없고 구경만 하고 나오려고 했는데, 남편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 여기 별가가 있어!!!! 이거 뽑아봐
수많은 인형 뽑기 기계들 사이에서, 진짜 별가가 있었다. 내 꿈속에서 나왔던 별가. 나는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내 머리통을 때리고 두들겨 패고 내 목을 졸랐던 나쁜 놈.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왠지 이놈을 꼭 집에 데려가고 싶었다. 내 경험상 인형 뽑기는 한두 번만에 뽑히는 경우가 잘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재미 삼아해보기로 하고 2천 원을 넣었다. 그리고 나는, 단 두 번만에 별가를 잡았다.
내가 별가를 뽑자, 나랑 남편은 신나고 웃겨서 한참을 배를 잡고 웃었다. 심지어 남편은 별가와 나를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면서 여러 번 사진을 찍어주었다. 둘 다 너무 신기하고 희한해서 집에 가는 길 내내 별가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별가가 인형 뽑기 가게에 있지? 그리고 난 왜 오늘 꿈을 꾸었지?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또 뽑았지?
그렇게 나는, 꿈속의 폭행범을 검거했다. 그리고 집에 가는 내내 괜히 주먹으로 별가 머리를 몇 방 때렸다. 속이 시원했다. 그렇게 나를 두들겨 패더니, 현실에서는 아무 힘도 없구나.
나는 가끔 나 스스로, 멍청하고 쓸데없는 꿈을 자주 꾼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별가 인형을 손에 쥐고 집에 돌아왔을 때만큼은 뭔가 기분이 묘했다. 묘한 수준이 아니라, 이거 행운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를 때린 놈을 스스로 검거하고, 복수를 하고, 최종적으로는 나의 편, 나의 동료로 맞이하여 집으로 들였다. 침실 위에 고스란히 세워뒀다. 이것만큼 해피엔딩이 또 있을까.
요즘 들어, 행운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싶다. 행운이 올 거야, 행운이 올지도 몰라. 혹은 행운인가 봐.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정말 내게 행운이 올 것만 같아서. 작고 소소한 일에도 큰 기쁨으로 올 수도 있으니까. 바라고 바라던 일이 꿈에서 더 많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다시 친구가 될 수는 없어도, 꿈속에서 만큼은, 네가 나를 이해해 줬으니까.
행운이 올 거야. 날 패버린 용의자 별가씨를 직접 검거했으니까.
그렇게 35살의 10월이 왔다.
커버사진 여미
글 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