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너의 천국이고, 현실은 네가 만들어갈 세계다
감정은 도망쳐야 할 곳이 아니다.
머물러도 괜찮은 천국이다.
아직 젊잖아요.
나는 그 젊음을 지금의 어려움과 바꾼다면,
그래도 바꿀 것 같은데?
세상 무거워질 뻔 할때마다 나를 일으키신 분이 있다. 너무 감사해서 감사하다는 말이 가벼워질까봐 조심스러워서, 그래서 아끼게 되는 그런 분.
아니,, 남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시나? 아니! 남 일같지 않게 보시니 이런 말로 나를 가볍게 해주시는거지. 그래서 이 말 한마디에 세상 다크해져서 부글부글 검은 용암마냥 끓어올랐던 나의 감정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그래서 지금 마주한 현실이 '상관없어'졌다. 어떻게 가능할까?
이용하라는거다. 가볍게.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그 감정을 이용해서
머리를 쓰라는거다. 마음을 쓰지 말고.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그 감정을 이용해서 머리를 쓰라는 거다. 마음을 쓰지 말고. 왜 그래야 할까.
마음은 생의 에너지를 쓰는 것이고, 머리는 삶의 에너지를 쓰는 것이라면.
마음을 쓰는 건 한 겹 한 겹 쌓아 올린 근육을 쓰는 일이고, 머리를 쓰는 건 이미 들어온 지방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전환하는 일과 비슷하다. 근육을 과하게 쓰면 근손실이 오고, 몸 전체의 균형이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소중한 근에너지를 함부로 쓰지 않기로 했다.
저를 다시 만날 일은 없어야겠지만,
만나야한다면,
도움이 되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말을 남기면 이런 자취가 남는다. 어려운 일이 닥친 후 마주한 사람들과의 상황은 '다시 만날 일이 없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러한 현실이 닥쳤다면 '도움이 되기에 최선을 다 할 사람'을 남기는 것. 그것에 요즘 내가 살아가는 에너지를 얻고 감사함을 얻는 원동력이다.
웃음꽃 피는 깔깔대는 침댓머리에서, 나는 나의 딸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웃고 떠드는 그 자리가 좋아서, 아니, 좋을 줄 알아서 분리수면은 내 생에 없다고 진작에 마음 먹었던 것이였다. 지금도 이따금, 코골며 자는 아이들의 이마를 만지며, 열은 없는지, 세상 평화롭게 꿈꾸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며 입맞추기도하고, 이불을 다시 덮어주기도 한다. 꼭 안아보기도 하고 발을 마주대보기도한다. 너무 행복하다. 이게 행복인거지.
이런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걸까? 꼭 해야할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
요즘 유독 자기 전에 눈물로 '마감'하는 날이 많아진 예비 초등학생 둘째에게, 엄마와 언니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딸아,
고양이 인형이 없어진게 그렇게 속상했어?(ㅜㅜ)
하지만..눈물은 상황을 해결해주지 않아.
네가 원하는 바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해.
엄마,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괜찮다고 이야기해줘. (혼내면 안돼.)
하지만 그 슬픔을 알아달라고 떼쓰는건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해줘.
혼내지 않는다. 하지만 떼쓰는 슬픔은 받아주지 않는다. 그 균형이 참 어렵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밤이다.
예전엔 그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고, 토닥여주고. 그런데 자주 눈물을 보이는 둘째가 걱정되기도 하고. 그런 걱정에 이제 엄마가 '안 받아 줌'해버리면 동생이 또 얼마나 속상할까. 그런 생각까지 하는 별아이다. 따뜻한 마음의 레이어드랄까. 내 마음이 따뜻해져 화내기가 싫어지는 밤이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매일 같이 자면서도, 우는 동생 안고 우는 딸래미 안고 토닥이고 귀여워서 뽀뽀해주고 꼭 안아주고, 잠들라치면 '엄마, 잘 자 사랑해, 동생, 잘 자 사랑해.'. '응 우리 큰 딸 잘 자 사랑해, 우리 두찌 잘 자 사랑해. 그리고 잠이 솔 들라치면 '엄마, 잘 자 사랑해. 언니, 잘 자 사랑해.' 돌림노래가 계속된다.
잠들기 전 감정은 아무 걱정 없는 천국 같다. 그래서 마음이 평온해진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다보면 '나답지 않았던 일들' 투성이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나는 울었어야 했다. 그런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아이 둘을 양육하며 극 F로 향했던 내가, 그래서 회사에 복귀해서도 이를 경계했던 내가.
무엇이 힘든건지. 무엇이 보이지 않는 건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보고 힘을 내야하는 건지. 누군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나의 상황' 속에서 내가 그 답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는 나의 상황을 다 아는 듯이 이야기해주지만, 그리고 그 이야기가 매우 또는 아주 많이 전문성을 띄더라도 나에게는 정답이 아닐 수 있는 일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움'이라 표현하고 '슬픔'을 느낀다 한다.
어려움 속에서 가벼움을 대하라는 태도. 그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네 문제보다는 내 문제. 혹은 네 어려움보다는 내 어려움이 더 한 것이 사실 아닌가?
남의 어려움을 보고 가벼워지라는 것보다, 내 안에서 그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를 '가볍게' 바꾸어보자.
눈물을 흘리라고. 맞다. 슬픔이 오면 눈물을 흘려라. 아주 마음껏. 욕도 해보고, 원망도 해보며 울어라.
눈물을 흘린 후, 그 시원한 마음을 갖고 일어서라.
눈물은 현실을 해결해 주진 않지만 마음에 가벼움을 주고,
우리는 그 가벼움을 통해 머리를 움직일 전환의 계기를 삼는다.
현실은 누군가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눈물을 흘린다고 누군가가 대신 네 일을 해주지 않는다.
감정을 부정하지 않되, 현실을 포기하지 않아야하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야한다.
그럼 누가 똑똑한 것 같아?
요즘 시대의 '똑똑함'은 AI가 제일이지 사람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 똑똑함은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이 아니다. 던져진 에너지를 맞아 쓰지 않고, 피해버리지도 않고, 내 에너지로 전환할 줄 아는 힘이다.
테니스를 치는데 상대방이 공을 던진다.
그 공을 그대로 맞을거야?아프게?
그 공을 피하기만 할거야? 공격도 안하고?
던져진 공의 에너지를 그대도 전환해서, 너의 에너지로 쓰라고.
그것도, 유쾌하고 아주 현명하게.
그게 삶의 재미란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감정을 없애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감정은 충분히 느끼되 현실은 머리로 살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언제나 아이들에겐 이 테니스공 이야기와 쿵푸팬더의 흉내는 잘 먹힌다. 이렇게 힘겨웠던 오늘의 엄마는 아이들과 감정의 천국에서 하하호호 웃으며 꿀잠을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