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성킴 Apr 29. 2022

호캉스를 다녀왔다

 일요일 오전, 남편이 당근 마켓을 뒤적거리다가 드림타워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투숙권을 저렴하게 구입했다. 30분 만에 준비해서 제주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향했다. 호캉스를 간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윗집 손주들이 (3명으로 추정) 주말 내내 머물면서 미친 듯이 뛰고, 소리지르기를 이틀째. 우리는 나가야만 했다. 나갈 곳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날씨가 정말 좋았다. 야외 수영장에서 놀기 좋은 날씨기도 해서 지체 없이 집을 나섰다. 우리 가족 첫 호캉스다. 

 제주에 와서 집이 아닌 곳에서 머무른 적이 몇 번 있기는 하지만 호텔은 처음이다. 셋이 해외여행을 갔을 때도 에어비앤비에만 묵어서 호텔의 서비스를 경험해 볼 일이 없었다. 4년 전 나이아가라에 갔을 때 힐튼 호텔이 묵은 이후로 처음 호텔에 왔다. 낯설었다. 드림타워엔 몇 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처음 호텔룸으로 올라가는 거라 중간에 버퍼링이 왔지만 그래도 무사히 21층 우리 방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마자 ‘우와!’하는 소리가 자동으로 나왔다.

 “엄마, 여기 누구 집이야?” 정안이 묻는다.

 “오늘 하루는 여기가 우리 집이야. 우리 오늘 여기서 자고 갈 거야.” 

 내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이게 자본주의의 힘인가.

 “우와, 엄마 우리 집보다 여기가 더 좋아!”

 이제 호텔이 좋다는 걸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네. 아이들이 호텔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진짜 그렇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숲을 보고 사는지라 시티뷰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룸에서 꼼짝도 안 하고 싶었지만 우리는 수영장 이용이 목적이기도 하니 얼른 준비해서 내려가기로 했다. 체크인 이후의 수영장엔 사람이 많다는 블로그 글을 보았기에 그 시간 전에 수영장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우리는 얼리 체크인을 해서 사람이 별로 없었다. 

 따뜻한 야외 수영장에서 까르르 웃으며 노는 정안을 보니 진작 왜 안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자연의 바다에서 모래 놀이하고 뛰어다니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편하게 따뜻한 물에서 잠수도 하고, 가만히 둥둥 떠다니기도 하는 시간 역시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나에게도 약간의 휴식시간이 생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어딘가에 가는 것은 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낯선 곳에서 오는 불안함과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서 호텔은 신기하게도 그런 불안요소들을 조금 가감시켜주는 효과가 있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무슨 일이 갑자기 일어났을 때 도와줄 직원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고, 그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만들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그리고 장거리로 아이와 어딘가에 가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비행기를 오랜 시간 타는 것, 차를 오래 타는 것 이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아이와 함께라면 훨씬 더 힘들어진다.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한다거나, 지루해한다거나, 카시트에 앉지 않으려 한다면? 여행 시작도 전에 이미 모든 에너지는 고갈된다. 하지만 집에서 30분만 차를 타면 올 수 있는 곳에서 하는 여행이라니. 호캉스가 어떻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겨울이고 봄이고 제주의 밤은 조금 심심하다. 특히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할 게 없다. 밖에 나가서 술을 한잔 할 수도 없고. 하지만 호텔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밤 10시까지 하는 야외 수영장, 실내 수영장은 11시까지 사용할 수 있다. 특히 키즈 아케이드(오락실)는 아이와 함께 놀기에 정말 좋았다. 늦은 시간의 오락실은 무서워서 가질 않는데 이곳은 그런 걱정이 없으니 더 좋았다. 담배 냄새나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 그런 것들이 없으니 정신적으로 피로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식당과 카페가 건물 안에 있고, 편의점도 있어 편리했다. 미니바도 이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던지. 사용해 보지 못한 명품 브랜드의 어메니티를 쓰고 있자니 자본주의의 행복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큰 욕조에서 반신욕을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워 왜 사람들이 호캉스를 오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잠깐 동안 일탈이 가능한 곳, 멀리 가지 않아도 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이 호캉스가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만 머무는 프라이빗한 독채 펜션이나 조식이 잘 나오고 귤 따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예쁜 숙소도 좋지만 가끔 이렇게 호텔에 머무는 것도 기분 전환에 좋다는 것을 호캉스를 해보니 알 수 있었다. 


 호텔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여행이란 집에서 얼마나 가깝냐 머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상의 루틴에서 벗어나는 것, 조금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 이런 것들이 모여 여행이라 것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닐까. 늘 먼 곳으로의 여행을 좋아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이 익숙한 환경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질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즐거운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이와 함께라서 일까? 공간의 분리 속에서 오는 새로움을 느끼는 것 자체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 모두가 여행을 오는 이곳 제주에서 지루함을 느낀 하면 배부른 소리겠지만 일상의 지루함을 느끼던 차에 이런 호캉스가 나를 리프레쉬시켜주었다. 이제 자주 호캉스를 떠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프로불편러의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