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개월 가량을 동네 산부인과를 다니면서 배란유도제를 먹고 배란초음파를 보고 관계를 맺었더니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한달에 산부인과를 3번정도 가다보니 점점.. 내가 왜이러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임신이 왜하고 싶은걸까? 엄마가 되고싶긴한걸까? 무엇을 위해 애를 낳아야 할까?
라는 원초적인 질문들에 사실 하나도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사람이 성인이 되면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처럼, 임신과 출산도 자연스러운 순리라고 생각했다.
신혼 초는 알아주는 애주가인 남편과 내가 만났으니 물만난 고기마냥 술을 열심히 먹었다.
살도 찌고, 피부도 안좋아지고, 체력도 떨어졌다.
아이는 갖고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피임도 물론 열심히 했다.
우리의 신혼집은 15평의 재건축을 앞둔 30년도 넘은 소형아파트였는데 첫번째 동의 끝집, 엘레베이터도 없는 5층 꼭대기층이라
겨울이면 웃풍에 코가 시려 둘이 끌어안고 덜덜떨며 자기도 하고, 물을 틀어놓지않으면 수도가 얼어서 고생을 했었다.
화장실에서는 녹물이 나와서 필터샤워기를 쓰면 2달만에 필터가 노래지기도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성인 2명도 살기 힘든 환경에서 아이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둘만 사는 삶이 행복하기도 했다.
나보다 1년 뒤에 결혼한 여동생이 23년 9월 첫째 딸을 낳았다.
동생의 임신과 출산은 질투나 원망, 이런것과는 거리가 먼 ‘신비로움’이었다.
‘어떻게 아이가 생긴거지? 사람이 어떻게 뱃속에서 자라고 나오는거지?’ 라는 호기심 가득한 질문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아이가 태어나고 동생의 삶은 참 많이 바뀌었다.
꾸미기를 좋아해 옷과 신발에 관심이 많은 동생은 자기의 옷과 신발보다는 조카의 옷을 (제부의 표현으론)‘일회용품 사듯이’ 사기 시작했다.
본인은 엄청나게 큰 투엑스라지 스투시 반팔과 검정 츄리닝 바지면 그만이었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동생이 첫째아이를 낳았을때가 29살.
요즘엔, 이 나이에 아이를 낳지 않으니까 많이 막막하고 외로웠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부터 열까지 서툴고 어디에 물어봐야할지 몰랐을 거 같은데 얼레벌레 첫째를 키우더니 얼마전(25년 5월) 둘째딸을 또 낳았다.
옆에서 지켜보면 정말 슈퍼우먼이 따로없다. 첫째는 소리를 지르며 뛰어놀고, 둘째는 잠들었음에도 내려놓지 말라며 운다.
제부는 말라가고, 동생은 지쳐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가정이 완벽해보였다.
육아가 힘듦에도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 이쁘고, 아이의 재롱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둘만 존재할때보다 아이가 생김으로서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빛을 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래서 난 아이가 갖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