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2년 차 육아 0년 차
산후조리원 막바지에 아이 목욕하는 것을 알려준다. 자주 모유를 먹이러 가는 아내와 달리 나는 신생아실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신생아실 개수대에 따뜻한 물이 플라스틱 대야에 놓여있다. 닦는 물과 씻기는 물이 두 대야에 나눠있다. 성큼이가 누워있고 그 옆에는 씻기고 새로 갈아입을 속싸개가 놓여있다. 아이는 쉽게 추워지니 무엇보다 신속하게 그렇지만 부드럽게 씻겨야 한다.
아이의 알몸을 처음 보았다. 작았다. 산후조리원 선생님이 아이를 따뜻한 물에 엉덩이부터 살짝 닿게 한다. 다행히 성큼이는 울지 않았다. 몇 번 목욕으로 적응이 된 것인지. 물로만 아이의 얼굴을 씻긴다. 아이의 눈곱을 물로 닦아내고, 아이의 입 주변을 닦아낸다. 입은 아이가 바깥과 가장 많이 만난다. 아이는 입이 가장 바삐 움직인다. 말하는 입 이전에 먹는 입이다. 인간만이 가졌다는 고등 언어의 발화 이전 입은 동물과 동일한 기능인 먹는 것에 집중한다. 먹으면서 입으로 엄마의 가슴과 만나고 젖병의 꼭지와 만나서 세계와의 물질적 교감은 물론 온기와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아이용 비누로 머리를 감긴다. 이제 몸을 씻긴다. 그러려면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의 공간에 아이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걸쳐 놓아야 한다. 아이는 꼭 철봉에 매달린 것처럼 어른의 왼팔에 의지한다. 아이의 두 팔이 허공에서 버둥거린다. 갑자기 아이가 운다. 산후조리원 선생님들이 아이들은 두 팔이 의지할 곳이 없으면 불안해하고 운다고 한다. 아이의 성장은 생명체의 진화를 속성으로 거치는 것 같다. 분열이나 복제가 아닌 수정을 통한 생식에서 일정기간 척추동물의 어떤 형태와도 다르지 않다. 일정 기간이 지나서야 포유류의 형태를 띤다. 모든 포유류 중에서 가장 생존에 부적합한 상태로 태어나 직립보행을 통해 생존에 치명적으로 심장을 노출하게 된다. 진화가 우연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경우가 인간이겠지.
아직 성큼이는 걷지 못하기 때문에 손과 발의 차이는 없다. 손이 자유로운 것보다는 손이 어딘가에 놓여있거나 닿아있어야 안정감을 느낄 것이다. 아이가 손을 버둥거리다가 자기 손에 자기가 놀라 우는 경우가 있어서 아이의 손을 속싸개로 감싸 움직이지 않게 한다. 성인의 입장에서는 불편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신생아에게는 안정감을 위해 필요한 방법이라고 한다. 성큼이가 팔로 선생님의 왼팔을 지지하자 울음이 잦아들었다. 철봉에서 거꾸로 오르기를 하는 아이와 비슷한 몸짓이다. 아이의 몽고반점이 보이고 중간중간 몽고반점 같은 어두운 흔적이 남아있다. 아이의 피부색은 흰색이었다가 이내 붉은색이 되고 아이의 얼굴은 울다가 금세 웃는다.
10분도 걸리지 않게 아이를 씻기고 금세 말린다. 빨리 말리려고 드라이를 써서도 안된다. 수건으로 빨리 말려줘야 한다. 체온 유지를 위해서 방의 온도도 26도 전후로 해야 한다. 지금 성큼이는 매달려 있는 삶이고 차차 몇 단계를 거쳐 말하고 먹고 서있는 인간 개체가 되어간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에서는 태어나서 2년 전후로 아이가 10단계의 변화를 겪는다고 한다. 그 단계마다 아이는 매우 불안해한다. 까닭 없이 울어 재낄 때 나와 아내는 얼마나 아이에게 필요한 대처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의 첫 경험이 새롭고 인상적이지만, 각인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아이가 10단계의 절차를 '언어 없이' 겪으면서 쌓아갈 계단 앞에서, 아내와 나는 얼마나 그것을 오르는데 버팀목이 되고 지지대가 될 수 있을까. 시간의 지루함은 익숙함에 있고, 시간의 불안함은 새로움에 있다. 모두 누군가에게 매달려있는 삶을 산다. 스스로 매달리고 허공에 다리가 뜨더라도 턱걸이를 할 수 있을 때까지 혹은 턱걸이를 하지 못하더라도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됐다는 단단함을 온몸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모유 수유에 피곤해 잠이든 아내가 침대에 가로누워있다. 무릎을 굽혀도 발이 살짝 침대 바깥으로 나와있다. 생후 16일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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