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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뱅커 May 01. 2024

영화 <시>

시를 쓴다는 것. 사람으로 산다는 것.

사람다움이란…

   당신은 진심 어린 사과(謝過)를 해본 기억이 있는가? 또는 그런 사과(謝過)를 받아 본 기억이 있는가? 사과(謝過)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이란 뜻이다. 반성(反省)은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돌이켜 봄'이란 의미 고, 염치(廉恥)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우리는 어쩌면 사과와 반성, 염치가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 속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를 짓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라는 시인의 말처럼, 추하고 더러운 세상에 사람 다움의 의미를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주>(이준익, 2016) 속 청년 윤동주(강하늘)는 아름다움을 허락하지 않는 시대에 시(詩)를 꿈꾸고, 몽규(박정민)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참회한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과 고(故) 노회찬 의원은 참회와 염치없음에 소아(小我)를 버리고 대아(大我)의 길을 택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이유이리라.

 

<겉모습의 아름다움을 보는 미자>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보는 것

   영화는 소녀감성을 간직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노년의 여성 미자(윤정희)가 ‘시(詩)’를 통해 우리 삶을 비평하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을 제대로 보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미자는 이혼한 딸의 아들 종욱(이다윗)을 돌보고 있다. 저소득층 지원금과 가끔 중풍에 걸린 강노인(김희라)의 간병일을 하며, 넉넉하지 못한 생활을 하지만 큰 욕심 없이 늘 밝고 꾸미기를 좋아하는 멋쟁이 할머니이다. 종욱은 이제 막 여드름이 나기 시작한 사춘기 중학생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미자는 시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종욱과 그 친구들의 집단 겁탈로 또래 여중생이 자살한 사건이 일어난다. 종욱 친구 부모들은 죽은 소녀의 아픔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하나 같이 자기 자식들 장래만을 생각하고 돈으로 사건을 덮기에 열중이다. 종욱 역시 죄책감이나 반성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미자는 죽은 소녀의 흔적을 찾으며 세상의 추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소녀의 아픔에 슬픔과 참회, 부끄러움을 느끼는 미자>

   죽은 소녀의 사진을 가져와 종욱에게 대면시키거나 “짐승도 자기 흔적은 치운다!”라고 애써 돌려 말하거나 자던 종욱을 깨워 “왜! 그랬어! 왜!”라고 절규하는 등 반성과 참회의 기회를 주고, 부끄러움을 느끼기를 바라지만 종욱은 애써 외면한다. 이창동 감독은 인터뷰에서 “어느 순간, 내가 뭘 남겼지? 싶은 느낌이 있다. 내가 남긴 게 과물이 아닐까 싶은 거다. 새로운 세대에 대해 이해할 수 없어서 당황하게 된다.”라는 말을 했다. 아마도 이 순간 미자의 심리가 그랬을 것이다. 미자는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애쓰던 자신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 봐도 뿌듯하게 했던 손자가 염치없는 괴물이 된 것을 보고 세상에 아름다움이란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미자는 종욱이 스스로 참회하기를 바라지만 종욱은 외면한다>

   죽은 소녀 어머니를 회유하기 위해 찾아가던 미자는 전원의 풍경에 기억을 내려놓고 만다. 늘 그랬듯 위를 바라보며 맑은 하늘과 새, 나무와 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그리고 우연히 땅에 떨어진 살구를 발견한다. 죽은 소녀 어머니에게 그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뒤돌아서면서 이 아름다운 곳에 온 이유가 기억난다. 이 순간 미자는 공포에 가까운 부끄러움을 느낀다.

<떨어진 살구를 통해 세상의 이면을 깨닫는 미자>

   미자는 늘 예쁘기만 했던 손자의 추함. 피해자의 고통 따위는 관심 없는 부모들. 조화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제대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한 자신에게 벌을 주고 참회하기로 한다. 이제 미자는 세상의 추함과 더러움을 자신의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아파했던 소녀를 진심으로 바라보며 시를 완성한다. 그렇다. 삶의 더러움, 추함, 고통을 통과하고 나서야, 아니 그 고통을 느끼게 된 순간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은 미자가 자신의 시를 낭독하면서 자연스럽게 죽은 소녀의 목소리로 전환된다. 그리고 소녀는 다시 살아나 우리를 향해 바라보며 끝이 난다. 마치 “진정한 아름다음 이란 뭔 가요? 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나는 이제 아름다움을 찾았어요. 당신들은 어떤 가요?”라고 말하는듯하다. 이는 미자의 말이기도 소녀의 말이기도 하다.

<미자의 시 낭독은 소녀의 목소리와 얼굴로 전환된다>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랫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랫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아름답다는 것.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

   아름다움에는 고통이 따른다. 우리가 사람으로 산다는 것… 아니 사람답게 산다는 것도 고통이 수반된다.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것은 산통 뒤에 자식을 낳는 순간, 지하 단칸방의 서러움을 이기고 새집에 이사 가는 순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영화 속 인물들은 말한다. 아마도 미자와 이창동 감독은 아름다움, 사람 답다는 건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돌이켜 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있다는 것. 이라고 말하고 싶었던건지 모른다.  “짐승도 자기 흔적은 치운다!” 라는 미자의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진정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사람으로 산다는 것?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살아야 하나?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를 향해 질문하는 영화와 아네스의 표정에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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