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범>을 읽고
이 책을 시작하면서부터 왜 제목이 '표범'인지 궁금했다. 표범이 언제 어떤 형태로 나오는지도 살펴봤다. 우선 살리나 가문의 문장이 바로 원제인 'Gattopardo'라는 지중해와 북아프리카에 서식하는 serval라는 고양잇과 맹수라고 하는데 아래의 그림과 같다.
그렇다면 누가 과연 '표범'의 주인공일까. 책을 덮고 나니 콘체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총 11번의 표범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유독 확실히 표범이라고(p.210) 콘체타를 지칭하는 대목이 있다. 오만한 동물에게 한계를 지워야 한다고 하면서 시칠리아 여인을 지칭하며 자존심을 앞세워 결과가 뻔할 거라 말한다. 일흔이 넘어서야 오만과 아집을 벗어던지는 모습에서 이미 시칠리아의 몰락하는 가문과 콘체타가 동일시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실제 주인공은 돈 파브리초이다. 몰락한 가문의 수장은 마치 조선시대의 돈 없는 선비를 떠오르게 한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기 싫다는 그럴싸한 명분 뒤에 숨어버린다. 사냥터와 돈나푸가타의 장소 대비로 사냥터가 에덴동산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지 오래된 사람이기에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지만 계속해서 외면한다. 특히 상원의원을 제안하는 데 있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던 사건, 시장인 돈 칼로제로의 돈만 따지는 효율적 제안 때문에 명성은 잃고 애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다. 새로운 권력에 도취하여 비열한 짓을 저지르는 돈 칼로제로 세다라 같은 이들을 감싸게 되는 행동을 했던 건 자신의 지위에 걸맞지 못한 행동이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돈 파브리초가 딸 콘체타가 탄크레디를 좋아하는 걸 알고도 외면한 사건이 가장 잘한 일처럼 그려진다. 탄크레디는 안젤리카와 결혼하게 되지만 계속 위태위태하다는 문장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서로의 결점에 눈을 감고 운명의 경고에 귀를 막고 착각에 빠져있다고(p.285) 이야기한다. 그보다 전에 안젤리카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사랑에 빠져있다고(p.182)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불길한 미래를 그리는 이유가 이탈리아의 미래와도 맞닿아 있었던 걸까 싶다.
수십 년 동안 남부 사람들은 게으르고 굴종적인 사람들이라고 비난받게 됐다는데(p.147) 그들에게 처음 주어진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책임감 있게 행사하지 않은 탓이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는 듯하다. 이후 이탈리아는 세계대전에서도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독재자가 중간에 등장하고 이후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여전히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듯 보인다. 어쩌면 저자는 시칠리아를 무대로 하지만 이탈리아 전역에 경고를 보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탈리아 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나폴리 4부작에서 다룬 억양에 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각 지방마다 조금씩 억양이 다른데 안젤리카가 피렌체 기숙학교 생활로 지르젠토 억양이 지워졌다는(p.101) 사실을 언급한다. 아무래도 이탈리아는 각 지역마다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어 상류층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억양은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그 외에도 권력의 주인공은 바뀌지만 결국 똑같은 결과가 벌어지고 역사는 반복되면서 하강곡선을 그리는 장면을 여러 방법으로 보여준다. 천주교(예수회)의 몰락, 가문의 몰락 등을 통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