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고, 참고 <치즈 이야기>
반가운 주제의 소설을 김애란 작가가 써주다니 바로 독서 모임을 모집했다. 그 사이 조예은 작가도 비슷한 주제의 단편집을 내니 아무래도 시대적인 흐름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는 사람들의 감정 묘사를 굉장히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어 아마 읽는 동안 내 마음속 어두운 부분이 자석에 붙어서 표면으로 올라올 수 있다. 조예은 작가의 <치즈 이야기>는 언제나 그랬듯이 특별한 구성으로 책에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흡입력 있어 중학생 아이들과 읽었을 때도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
신형철 평론가는 언제나 '경제적 인간'으로만 살아가게 되어버린 우리가 이 책에 있다고(p.299) 말한다. 경제라는 주제로 책을 써줘서 반갑다고 표현해야 할까. 이 참에 돈이 좀 더 대화에 건전하게 등장하길 바라본다. 한국에서 부동산 문제나 경제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반갑다고 표현하게 된다. 돈과 관련된 주제는 사람이 고귀해 보이지 않는다던지 천해 보인다는 편견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보니 어릴 때부터 건강하게 돈을 다루지 못하고 속물처럼 다루게 되는 일이 흔해 보인다. 게다가 돈과 관련된 지식 습득은 너무 투자와 가치 상승에 매몰되어 있기도 하다.
'돈'과 '노후'는 선주의 머릿속에 오랜 강박관념처럼 박힌 주제였다. p.195
각 단편 중에 '안녕이라 그랬어'는 예전에 읽었는데 인상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오히려 '좋은 이웃'이나 '빗방울처럼'의 주제가 좋았다. 어쩌면 내 관심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인 거 같다. 게다가 마지막에 주인공 눈에서 눈물이 흐를 때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부동산 문제를 오롯이 혼자서만 고민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져서일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말들이 있다. 어쩌면 알지 못했던 욕망이었을지 모른다. '좋은 이웃'에서는 사람들의 부동산 욕망에 대해 쓰여 있다. 다들 애써 외면하고 싶은 내면의 목소리다. 신자유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생존하기 위해 부동산을 가지려는 마음은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 게다가 책임져야 할 자녀가 있는 경우에 욕망이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돈에 대한 나의 마음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서로 충돌할 수 있다고 하는데 공존할 수 없는 걸까?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재산'을 지키고 싶다고 한다. 둘 다 같이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는 건지 나 또한 궁금하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엄밀히 말하면 진짜 '우리 집'도 아니고 누가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집안 곳곳을 정성스레 쓸고 닦았다. 이런 식으로 집과 헤어지는 게 억울하고 서운하면서도, 이십 년 넘은 이 아파트를 우리가 얼마나 공들여 가꾸고 깨끗이 사용했는지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p.107
남편은 잠시 침묵하다 "내가 탐욕을 부리거나 투기를 하겠다는 게 아니잖아. 그저 좀 생존하겠다는 건데. 가진 사람들은 세금 몇 푼에도 펄쩍 뛰고 피해자가 되지 못해 안달인데, 정작 사다리에서 튕겨나간 나는 좀 속상해하면 안 돼?" 항변했다. p.121
내가 연민하던 대상이 혼자 반짝이는 세계로 가버렸기 때문일까? 아니, 나는 시우를, 시우 어머니를, 그들이 사는 집을 내려다본 적 없는데. 그럼 마주 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 p.130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 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 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두에서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 p.141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p.142
한 번도 입 밖에 내본 적은 없지만 지수는 수호가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했다. 이 집이 좋다고 한 사람도, 이 집에 살자고 한 사람도 자기였기 때문이다. p.278
"바보같이 저런 걸 왜 당하지" p.279
너무 싫다. 문제가 자기 때문에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상황이 부동산에서 흔히 벌어지는 풍경이다. 최근 전세 사기만 해도 사기를 당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이런 식으로 전세 사기를 당한 사람 자체를 바보 취급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피해자를 두 번 죽이게 된다. 사기를 친 사람들은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이고 당한 사람이 바보라고 판단한다. 그 결과 경제사범에게는 형량이 적은 사회적 판단까지 더해진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잘 모른다고 하지만 범죄에 대한 형량이 적다는 건 사회적 인식 수준을 이야기한다고 본다. 한마디로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하는 행동은 할 수 있다고 용인하는 사회였던 거다. 과거 어려웠던 시절 경제사범들의 손에 지금의 경제가 부흥했던 나쁜 관습을 아직까지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소통의 오류(p.302)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그 이야기를 해봐도 좋겠다.
'레몬 케이크'에서도 마지막에 도대체 어떻게 사람들이 살아가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만 겪는 일은 아닐 텐데. 누군가는 진작 감내해 온 일일 텐데.' 다들 대체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p.214
결국 마지막 단편에서 해결책을 이야기한다고 느꼈다. 다정한 말 한마디로 바꿀 수 있다는 걸.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이가 건넨 정중한 문장이라 한국의 그 어떤 행정 언어나 법률 언어보다 더 정직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던 말. 그제야 지수는 자신이 그동안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 했는지 깨달았다. 더불어 그 답 또한 얼마나 기다렸는지도. 하지만 대답 따위 아무도 들려주지 않을 테지.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부디 살라고 얘기하는 물소리가. 지수의 두 뺨 위로 빗방울 같은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pp.293-294
이런 엄청난 사건들 속에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싶다가도 다정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다정함이 느껴져서 나 또한 눈물이 흘러내린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