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관측소>를 읽고
'재능'을 끌어들이는 도시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인구수 등의 '크기'와 '양'보다 '연결'과 '혁신'의 '밀도'가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흩어진 재능을 움직여 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세계의 슈퍼스타 도시들이 증명하듯 도시는 더 많은 자원과 인재를 끌어모으겠지만, 그러나 승자독식의 대가는 혹독할 것이다. 게으르고 비싼 도시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도시의 총자산은 비슷해도 매력, 다양성, 유연성이 탁월한 곳에서 더 많은 부가 창출됩니다. 자산과는 달리 이들 역량은 높으면 높을수록 해당 도시의 장기적인 성장에 유리합니다. p.66
예전에 도시가 만들어졌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지속적인 성장은 힘들고 이제는 '성장'에 대한 개념의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전에는 자본과 인구 증가가 성장이라고 여겨졌다면 앞으로 어떤 키워드가 대체하게 될지 궁금하다.
저성장 시대에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공간을 통해 구현될 경험과 교류의 실질적 가치를 볼 줄 아는 안목이 중요합니다...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산 사용 가치를 극대화할 수도 있습니다. p.176
저성장 시대임을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시각을 가질 필요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예를 들어 저출생 문제를 생각해 보자. 저출생은 이미 사회적 현상이다. 문제라고 바라보기보다 현상으로 접근하게 되면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저성장 시대를 계속 부인하고 앞으로 계속 성장한다는 가정 아래 대책을 고민한다면 원하는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방도시 살생부>에서도 지방에서 인구가 증가할 거란 핑크빛 미래를 제시하며 예산을 받고 인구 증가를 위한 대책에 돈을 쏟아붓고 있는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
최근에 출간된 책들 중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어 잠시 소개하고 싶다.
<탈 주택> 야마모토 리켄이 쓴 책으로 앞으로 어떤 주택이 필요하게 될지 이야기한다. 지역사회와의 관계, 커뮤니티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 거대함이 기본 단위가 아니라 변화에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좀 더 작은 협력 단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탈성장 개념어 사전> 자본주의에 관한 대안과 협동적인 의미의 재생산에서 사람과 자연의 성장 측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홍콩에 사는 탄자니아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소개하고 있다. 기존 호혜, 증여, 분배 이론과 달리 자본주의 형태에서의 새로운 대안적 커뮤니티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도시를 가장 도시답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일자리'입니다... '일'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거대한 경제 활동의 무대가 곧 도시입니다. p.156
<탈 주택>에서도 일자리를 고려하지 않았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구조가 있어야 커뮤니티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일자리가 아니더라도 경제활동의 구조를 띄지 않는 한 사람이 모이는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에서도 탄자니아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우선하면서도 선물을 주는 행위를 하기 때문에 좋은 커뮤니티가 형성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을 통한 부의 창출이 큰 바위가 되어 무대를 만들 수 있어야 사람들이 무대를 보러 오든 무대에 설 배우가 되든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제4의 공간 - 일, 가정, 사회적 공간을 넘어선 '사적 자아를 위한 공간'이 부상하고 있다. 나만의 몰입, 성장, 재충전을 위한 공간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과의 교류보다는 자아에 집중하는 고유한 영역이다. 그리고 제4의 공간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며 군집을 이루는 특성을 보인다. 앞으로 다채로운 모습의 제4의 공간이 도시를 채워 갈 것이다.
일상적 삶의 질과 동네 커뮤니티의 중요성 p.268
다른 책에서도 이야기하듯이 커뮤니티가 앞으로 더 중요해진다. 예전에 커뮤니티 기능을 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예를 들어 판잣집이나 하숙집과 같이 공용 공간이 있어 서로 오고 가며 만날 수 있는 구조)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주택 구조와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애써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커뮤니티 비즈니스에서 살아남은 곳들의 구조를 봤을 때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지속가능하다. 사람에 기대어 커뮤니티가 운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거다. <제3의 장소>에서 말하는 공간이 커뮤니티라면 제4의 공간은 아마도 커뮤니티를 이끌 사람을 만들어내는 무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상적 삶의 개념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가족 중심의 삶이 기본이었다고 하면 다양한 삶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 가족과 같이 어쩔 수 없는 관계성이 있었다고 하면 관계가 있다가 없어지지만 느슨한 연대가 중요해지면서 적당하게 마주치는 물리적 공간이 서로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야마모토 리켄이 설계한 집들과 같은 형태의 주택이 보고 싶다. 그곳에 살게 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도 체험해보고 싶다. 아직 한국에서는 사회 주택의 개념이 정착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잘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더 많은 시도와 실험이 있길 바란다.
1 가구 1 주택의 탄생에는 산업혁명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주택은 산업 노동자를 위해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를 지킨다는 것은 거주자들이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가족이야말로 단순한 주택정책을 초월하여 국가 운영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탈 주택> 중 pp.24-25
핵가족을 위한 주거 형식인 1 가구 1 주택이 더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형식을 생각하면 될 뿐이다. 그런데도 1 가구 1 주택의 붕괴에 대해 품는, 모두 외톨이가 되어버린다는 지나친 위기감은 우리가 얼마나 1 가구 1 주택이라는 주거 형식을 신봉하고 있는지 잘 증명한다. <탈 주택> 중 p.33
주택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경제활동에도 참가한다는 구조를 갖추지 않는 한 커뮤니티는 성립될 수 없다. <탈 주택> 중 p.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