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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다양성의 시작

<어쩌면, 사회주택>

by 태양이야기

변하는 사회에 발맞추지 못하는 주택 - 유연한 노동의 시대


유연화된 노동의 시대에 대출을 기반으로 한 자가 마련을 주거정책의 기본 철학으로 삼기에는, 소외되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p.8


지금의 20~30대는 유연한 노동의 시대를 살고 있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제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돼버렸다. 직장뿐만 아니라 직업조차 여러 번 바뀔 가능성이 크거나 이미 바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에 맞춘 주택 공급은 전혀 없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1인 가구를 위해 간편하게 이동하면서도 커뮤니티를 갖추고 '적시 이동권'을 사용할 만한 주택이 서울에 특정 지역구에만 존재하고 위치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

둘째, 대출을 기반으로 자가 마련을 할 수 없는 프리랜서의 고용 형태에 대한 대안이 없다. 유연한 노동의 대가가 평생 불안정한 월세 주거로 밀리게 된다면 구석에 몰린 생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만큼 큰 사회적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신용을 측정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던지 대출 기반의 주거가 아닌 형태로 안정적인 주거 공급이 시급하다.

셋째, 공공임대 주택의 소득 기준 제한을 없애야 한다. 소득 기준 제한으로 인해 더 이상 돈을 벌면 주거 불안정으로 내쫓기는 상태가 자유롭게 일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형국이다. 기본 욕구를 부정당하는 상황에서 무기력에 빠지거나 일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는 건 당연하다.


변하는 사회에 발맞추지 못하는 주택 - 불안의 시대


"사회주택"이란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주거 관련 사회적 경제주체에 의해 공급되는 임대주택 등을 말한다. -서울특별시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 등에 관한 조례 2조 1항 54
사회주택: 시장도 아니고 공공도 아닌 영역에서, 부담 가능한 주거비로 사람들이 오랜 기간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하는 주택


각종 불안이 존재하는 시대다. 불안은 언제나 존재했지만 전방위적으로 불안이 침입해 안정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대안이 없다고 느끼는 무기력의 시대는 아니었다. 기후 위기, AI로 인한 일자리 위기와 같이 삶을 흔드는 일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집이 없더라도 일자리가 있으면 벌어서 집을 사거나 안정적인 주거를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었다. 일자리까지 불안해지는 상황에 집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되니 '전세 사기'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삶이 송두리째 뿌리 뽑히고 있다.


주거라도 안정적이라면 일자리가 계속 바뀌고 요동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사회주택에 대한 정의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문구는 바로 '오랜 기간 마음 편히 살 수 있도록 하는'이다. 이제 오랜 기간 변치 않는 걸 찾기 힘들다. 오랜 기간 변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주택은 지금까지 중요한 가치였지만 앞으로는 더 큰 가치가 될 거란 사실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에 더해 제때 옮길 수 있는 권리까지 추가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변하는 사회에 발맞추지 못하는 주택 - 변화의 시대


작은 규모로 번갈아가며 정비하는 순환 정비 방식이 향후 도입되어야 한다. p.235


최근 송길영 작가의 책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이 떠오른다. 앞으로 경량문명이 도래하게 될 거란 이야기다. 사람들의 취향도 가지각색이라 작은 규모로 각자의 취향에 맞는 가게나 인스타가 잘 되는 추세다. 주택 또한 마찬가지다. 작은 규모로 번갈아가며 정비하는 순환 정비 방식에 동의한다. 지금까지는 큰 규모의 주택정비사업만 운영하고 있다면 작은 규모지만 다양한 주택을 보급할 수 있으며 운영하는 곳에 힘을 실어줘야 할 때다.


LH의 특화형 매입임대주택에 관심이 많은데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전혀 참여하지 못한다. 이제 기준이 가물가물해서 기억나지 않지만 300평 땅을 찾아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큰 땅이 서울에 있지도 않고 돈도 없어서.. 뭔가 작은 대지에서 만들 수 있는 특화형이나 여러 곳에 있어서 서로 교류할 수 있는 형태여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워낙 일 때문에 이동이 있기도 하고 여러 동네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런 니즈가 반영된다면 좋겠다.


변하는 사회에 발맞추지 못하는 주택 - 다른 선택을 하는 시대


청년 1인가구 입장에서 보면 참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수요자 입장에서는 임대료가 조금 더 비싸더라도 차라리 역세권의 좁은 고시원에 가는 것이 낫지, 교통이 불편하고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을 월 몇만 원을 절약하기 위해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265


너무 현실적이라 애써 외면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단락이었다. 그래서 저자 또한 마지막 즈음에 쓴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내가 부동산 강의를 할 때도 공급 자체가 중요하긴 하지만 양보다는 질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특히 지금과 같이 돈만 있으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상황에서 평균적인 질보다 낮은 주택을 과연 선택할까 싶다. 만약 나라도 선택하지 못했을 거다. 최근에 실린 기사에서도 공공임대주택의 신청자가 많아 경쟁률이 치열했는데도 실제로 집을 보고 계약하지 않은 세대가 많다고 했다.


전쟁통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기만 하면 좋아했던 시대는 지났다. 이미 지난 지 한참인데 아직도 양으로 승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공급되는 임대주택 숫자에 매몰되어 정작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사람을 먼저 살피고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물론 여기에 자세하게 언급하지 못할 금전적 어려움과 난관이 있다.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고 이런 책을 읽음으로 인해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필요하다. 당장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다양한 시도와 제안이 중요하다.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사회주택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개발사업에서도 보통 전체 비용의 5~10% 정도의 자기 자본을 투입하고 사업비는 대출을 통해 조달하지만, 분양 사업의 경우 분양 실적만 좋으면 그 분양 대금으로 대출을 모두 갚고 자기 자본도 회수하여 재투자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택은 임대 사업이기에 임대료만으로 초기비용을 회수하려면 약 20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사업자는 재투자할 돈도 회수하지 못하고 서류상 부채비율이 계속 높게 나오는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p.95


책 초반에 나오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부동산 관련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난관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택을 개발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용어나 개념이 머릿속에 어떤 공간으로도 생성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막막했을 것 같다. 나 또한 예전에 주택 개발에 대해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지금도 실제 개발을 하지 못해 뜬구름 잡는 이론만 알고 있다. 그렇기에 실제로 경험해 본 사람들의 어려움을 듣고 더 많은 사람이 이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문턱을 낮춰야 한다. 그래서 이런 책이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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