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을 읽고
서은국 교수님은 이 책을 출판하기 이전에 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이 먼저였다. 수업 제목은 '주관적 안녕감'이라는 subjective wellbeing이었다. 행복의 정의에 대해서도 상당 시간을 할애해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어제 독서 모임에서 수업을 2007년에 들었던 분에게 전해 들었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았던 내용이다. 행복에 대한 정의나 층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책에 조금 적어주셨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생각해 보면 이 책은 나온 지 꽤나 오래됐다. 내가 기억 못 하는 새 다른 책에서도 인용했고 이제는 익숙해진 개념이라 만약 예전에 읽었다면 조금 더 신선하게 느꼈을 수 있었겠다.
이번에는 조금 편하게 독후감을 썼다.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있었다.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언제 행복한지 알아차릴 수 있다. 미묘한 감정 변화와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를 알아야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데 동의한다. 조금 더 나아가자면 수단보다는 그저 감정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다. 어쩌면 그저 화학반응일 수도 있고 어떤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기 위한 이유를 만들어 주기도 하는 개념일 수 있겠다.
왜 행복을 느끼는가? 나는 여유롭고 싶어서 행복을 느끼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행복하면 마음에 다른 걸 담을 여유가 생긴다. 불안하거나 무기력하면 마음의 크기가 작아져 버린다. 행복은 마음의 그릇을 키워준다.
많은 사람이 돈이나 출세 같은 인생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행복을 과대평가한다고 말한다(p.121).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행복의 '지속성' 측면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물질주의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경향(p.176)이 자꾸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기 때문에 일정 금액이 넘어가면 행복과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된다. 다만 여기서 적당한 돈은 행복을 시작하게 만드는 문턱을 넘어가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돈을 과소평가하는 건 옳지 않다.
책의 내용 중에 급진적인 주장이라고 생각되는 건 유전적인 영향에 대한 이야기였다. 학자들에 따라 의견은 다르지만 학계의 통상적인 견해는 행복 개인차의 약 50퍼센트가 유전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p.137). 개인적으로 후성유전학을 지지하는 편이라 그런지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의견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유전적인 영향이 없다고 볼 수 없지만 그것을 발현하게 만드는 환경의 영향이 어쩌면 더 크지 않을까.
각 나라의 문화가 달라서 행복도가 달라진다는 주장은 일리 있다고 느꼈다(p.164). 그렇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문화가 기존 문화와의 충돌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집단주의 문화의 부족한 점이 심리적 자유감(p.166)이라고 하는데 서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개인적인 공간이 부족한 탓이다. 이때 서로 간의 간격은 심리적 거리라고 해두자. 그렇다면 책에서 이야기한 심리적 자유감 또한 가까운 거리로 인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개인주의 성향을 존중하고 배려해 주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집단주의 문화와 대척점을 이룬다는 식의 프레임이 잘못됐다. 서로 적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일 뿐인데 마치 개인주의 성향이 나오면 집단주의가 위태롭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서로를 포용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대화와 소통뿐이다. 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가 만들어졌는지 사회적 배경에 대한 이해와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자리가 필요하다.
그 외에도 알고 있었지만 다시 언급할 필요가 있는 한국 사회의 특징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극복해야 할 사회적 시선은 바로 타인 의식에 대한 것이다. 타인뿐만 아니라 나 또한 자유롭지 않은 과도한 타인 의식을 과연 어떻게 극복할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과도한 타인 의식(p.172)으로 인해 실패하는데 대한 두려움과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좌절감과 무력감으로 행복의 길에서 이탈하게 된다.
행복이나 감정은 신비한 정신적 힘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보다 과학적인 시각은 감정의 출발지인 외부 변화에 두는 것이다. 즉,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행복을 유발하는 구체적 상황들을 적극적으로 찾고, 만들고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p.208
'심리적 풍요'라는 개념이 심리학에 등장했다. 늘 즐겁지는 않아도 일상에 변화가 있고,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만드는 다채로운 경험이 있는 인생을 말한다. p.225
사람들은 쉽게 생각을 바꾸거나 마음을 다잡으면 힘든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조언을 하곤 한다. 너무 힘든 상황을 맞닥뜨린 사람은 쉽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생각을 바꾸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경을 바꾸는 걸 추천한다. 만나는 사람을 바꿔보는 건 그다음에 할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행복을 유발하는 구체적 상황들을 적극적으로 찾고 만들고 늘리려는 마음이 생긴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심리적 풍요'로 인해 행복을 담는 그릇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