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난한 아이가 주인공이라니

<올리버 트위스트 1,2>를 읽고

by 태양이야기

영국 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었다.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영국 소설은 <레미제라블>이다. 워낙 인상적으로 읽기도 했고 5권에 걸친 방대한 양 때문인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책에서도 당시의 사회를 묘사한 대목들이 인상적이었는데 <올리버 트위스트>도 같았다. 내용이 다를 뿐이지 책 곳곳에 당시 사회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건물이나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잊히지 않는다.


영국은 1795년 이후 시행되어 오던 빈민 구제법, 즉 구빈법을 새로 개정한다. p.410
이 구빈법 개정을 주도한 사람들은 벤담과 맬서스의 사상을 신봉하는 공리주의 사상가들이었다. 그들은 공리적 원칙과 합리성에 입각해 빈민의 자격 요건과 행정 절차의 강화, 남녀 분리 수용, 급식 제한, 강제 노역 부과 등을 골자로 하는 신구빈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구제 대상이 되는 빈민 인구를 최소화하는 한편, 빈민의 노동력을 최대한 창출해 냄으로써 빈민 구제에 드는 사회 비용을 절감하는 공리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p.411


책의 마지막에 해설을 보고 나니 왜 초반에 풍자적인 글이 등장하는지 알게 됐다. 영국이 공리주의자들에 의해 빈민 구제법을 새로 개정하고 시행했던 정책이 주는 충격이 고스란히 소설에 담겨 있었다. 소설은 현실을 아름답게 그린 거라고 하는데 실제로 얼마나 끔찍했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시궁창 같은 상황을 풍자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글을 쓰기 어려웠을 것 같다. 가장 웃기면서 슬펐던 문장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 구빈원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p.37)'라는 대목이다. 어찌 보면 실제로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구빈법을 개정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실업급여만 하더라도 시럽급여라면서 일도 안 하고 돈을 번다는 식의 혐오발언을 마구 쏟아낸다. 능력주의라는 공기가 뒤덮고 있는 한국에서 일을 안 하고 돈을 받는 게 꿀처럼 느껴지지 않을 텐데 경험해보지 못하니 전혀 알 수 없는 걸까?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거나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이 다수다. 그런데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나 동정 없이 그저 비판하는 건 어느 시대나 다른 얼굴을 한채 존재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나쁜 역할은 거의 유태인으로 설정된 것 또한 셰익스피어의 전통을 계승한 것인가 싶다. 제대로 만난 적도 없는 유태인을 무조건 악인이라고 전제했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도 사람들이 유태인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이 생겼을 정도라는 확신이 생긴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태인이 묘사된 것과 거의 유사하게 이 책에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영국 사람에 대한 혐오를 풍자하면서 유태인을 혐오하는 건 고치지 못한 게 그 당시의 한계인가 싶기도 하다.


올리브가 심각하게 안 좋은 상황을 겪으면서 과연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안녕이라 그랬어>에서도 마지막 단편에 희망의 단초를 심어놓았던 것처럼 이 책에서는 '딕'이라는 인물을 시작으로 희망을 조금씩 보여준다. 나 혼자뿐이라는 고독감에 힘들어하는 올리버에게 딕은 작은 팔로 감싸 안으며 사랑의 온기를 전해준다.

작은 두 팔로 올리버의 목을 감싸 안으며 말했다. "잘 가, 형! 하느님께서 형을 지켜 주실 거야!" 이 축복의 말은 비록 어린아이의 입술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올리버에게는 지금까지 받아 본 최초의 축복이었다. 그 후 온갖 고통과 시련, 곤경과 변화를 겪으면서 그는 단 한 번도 이것을 잊은 적이 없었다. pp.109~110


어린 아이라 작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딕'이 등장했을 때 과연 어떤 역할일까 싶었다. 그런 아이가 최초의 축복을 올리버에게 주었다니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브라운로 씨가 최초의 축복을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대체 아이에게 그 영광을 넘긴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안녕이라 그랬어>에서 외국인의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가 따뜻함을 느끼게 해 주고 위로가 됐던 것처럼 우리가 평소 아무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그런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세상을 살아가는 건 힘들 수 있지만 그런 따뜻함을 품은 사람들이 곳곳에 있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행복을 담는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