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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절반을 차지하는 자동차

<아빠차 오빠차 아니고 언니차>를 읽고

by 태양이야기

처음 운전면허를 따려고 학원을 찾아갔던 때를 떠올리게 됐다. 당시 아빠의 권유로 2종 수동에 도전했었다. 유럽에 가서 자동차 렌트를 할 때 수동일 확률이 있으니까 수동으로 따는 게 더 좋다는 논리였다. 나도 동의했기에 아무 생각 없이 선택했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문득 내가 조금 특별한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생각보다 수동 운전이 재미있었고 클러치와 액셀을 밟아가며 기어를 바꿔보는 게 신났다. 언덕에서 시동이 꺼지는 체험도 실컷 할 수 있었고 이제는 버스를 타도 기어를 바꾸는 소리와 느낌이 생소하지 않다. 수동 운전을 해본 덕분이다. 게다가 책에서 기어를 바꾸는 방법을 톱니바퀴를 인용해 설명했을 때 이해가 갑자기 확 됐다.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명쾌한 설명이었다.


첫 차를 산건 지방 파견으로 서울에 올라가는 길이 험난해졌을 무렵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다. 중고차 딜러를 하시던 지인이 있어 예산 규모를 정하고 차를 보러 갔었다. 그 당시 혼자 가서 몇 대의 차를 보고 무난하게 정했던 기억이 있다. SM3 흰색 차였다. 무려 10년을 탔다. 주차가 어려운 곳에 살다 보니 주차 실력과 운전 실력은 지속적으로 향상됐고 차량 관리는 거꾸로 엉망이었다. 지하주차장이 없는 곳에 계속 살다 보니 햇빛과 바람, 그 외 여러 풍파에 노출되어 생각보다 빨리 늙어버렸다. 원래도 엄청 싸게 사서 오래 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나름 선방했던 것 같다. 이미 10년 지난 차를 샀고 10년을 탔으니까 무려 20년이나 지나서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봐 팔게 됐다. 때마침 아이도 생기고 안전해야 할 필요가 더 높아졌다.


두 번째 차는 새 차로 살지 중고차로 살지 꽤 고민했는데 나름 비싼 중고차를 사기로 했다. 앞으로 어떻게 자동차 시장이 바뀌게 될지 모르니까 마지막 중고차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엔 소나타다. 저번보다 조금 큰 차를 타니 느낌이 달라졌다.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데 이전 차는 트렁크가 작아서 유아차를 싣기도 힘들고 여러 짐을 가지고 다니는 게 어려워 큰 차를 선택하게 됐다. 지금은 만족하면서 잘 타고 있다.


첫 사고도 기억난다. 압구정인가 신사 근처에서 저녁에 신호가 막 초록불로 바뀐 사거리였다. 대략 3차선에 내가 있었고 4차선에 트럭이 조금 앞으로 나가있어 오른쪽 시야가 막혀 있었다. 오른편에서 좌회전 차량이 빨간불로 바뀌기 직전 마지막까지 나가는 상황이었고 난 초록불이라 출발을 했다. 오른쪽에서 나오는 차량이 보이지 않아 상대 차량 왼편 문짝을 긁어버렸다. 무려 2명을 차에 태운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다. 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당황했는데 그래도 같이 있던 사람들이 있어서인지 정신을 차리고 보험사에 전화를 했다. 어찌어찌 처리가 되고 다음 날이 됐는데 갑자기 보험사에서 상대방이 대인처리를 하고 입원을 했다는 거다. 아니 어제만 해도 엄청 멀쩡했는데 갑자기 너무 화가 났다. 난 되도록 아프지 않으면 병원을 안 가려고 했는데 이참에 병원에 가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교통사고 이후 전문 병원을 찾아갔다. 정형외과랑 한의원까지 들렀다. 물론 어려서인지 운동을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나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 이후로도 사소한 사고가 있었다. 정차해 있는데 뒤에서 박히거나 주차한 차를 끓고 지나가는 일들이 있었다. 물론 내가 주차한 차를 긁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러면서 보험 내용이나 사고 난 처리를 하는 경력이 쌓여갔다. 되도록이면 사고가 나지 않게 조심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건 이 책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차와 관련된 이야기라서 한 번 적어보고 싶다. 바로 <사고는 없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야기다.

자동차 로비 세력은 무단횡단자라는 말이 욕설로서뿐 아니라 법률 용어로써도 널리 쓰이게 하려고 엄청난 캠페인을 전개했다. <사고는 없다> 중 p.42
이제 우리는 속도에 대해 말할 때 거의 언제나 과속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말하지 자동차가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게 설계된 것이 문제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자동차가 너무 빨리 달릴 수 있게 설계된 데 대해 대중의 비난이 일면 이들은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일부 무모한 사람들, 일부 '썩은 사과' 운전자들이 도로 전체를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수십 년 뒤 총기 로비 세력도 이 전술을 그대로 사용하는데, 다음의 슬로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총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사고는 없다> 중 p.44

자동차가 세상에 등장하고 사고가 생긴 이유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자동차 때문이다. 그런데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사람에게 그 원인을 전가하고 자동차를 생산해 돈을 벌 목적에 충실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과연 과거와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여러 원인 중 하나인 자동차를 이제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심지어 도시에서 차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70~80%이고 인도가 20~30% 밖에 안된다. 사람을 위한 도시가 아니라 자동차를 위한 도시다. 주객전도가 된 상황을 인지하고 사람을 위한 방향을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시시때때로 자동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지만 아이가 없었다면 자동차를 진작에 처분했을지도 모른다. 출퇴근이 곤란한 지역에 근무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자동차를 사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사람이 머무를 주택도 부족하고 아쉬운 상황에 자동차를 놔둘 공간까지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앓는 현실이 우습다. 과연 10년 후엔 나의 자동차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어떤 역사를 쓰며 자동차 연대기를 장식하게 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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