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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Oct 17. 2016

[동아시아면류학說]오모테산도 茂司의 매운 카레면

혼밥남녀. 같이 왔어도 내 점심은 오롯이 나만의 것.

도쿄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었습니다. 허술하게 짠 일정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이날은 일단 미나미 아오야마의 타로 기념관에 가서 화려한 그의 예술 세계를 살짝 감상하고 슬슬 걸어서 오모테산도를 구경하려고 했지만... 역시 패션엔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기념관을 나온 후 휘적 휘적 그냥 미나미 아오야마의 주택가 구경이나 합니다. 

주차하지마! 꺼져! 카아악! 
동네에는 동네 신사


걷다 보니 배가 고픕니다. 아침에 빵도 먹고, 밀크티도 먹었지만 점심이 되니까 배가 고파요. 

타베로그를 켜서 주변에 면집을 찾습니다.  오모테산도는 번화가라서 인지 적당한 가격의 면집이 별로 없네요. 그래도 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뒷골목에 평점이 좋은 라면집이 하나 있어서 슬슬 걸어가기로 합니다. 


가자.가자 먹으러 가자


찾았다. 시게지(茂司)

타베로그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素通り注意。すっぽん割烹が織り成す至高のラーメン。 : 茂司


그냥 지나침 주의라. 

사...사실이다. 지나갔다 되돌아 왔습니다.


외관이 묘합니다. 문이 시커멓기 때문에 앞의 영업 중 간판이 없으면 현재 영업 상황을 알 수 없습니다. 

가게 앞에 메뉴판이 있어서 슬쩍 들여다봅니다. 


폰트가 심상치 않네요. 

가격은 만만하고 종류도 여러 가지네요. 츠케멘, 미소, 스파이시 카레... 카레? 이건 뭐지. 

흠흠 일단 넘어가고 '자가제'... 이건 또 뭐지...?

이... 일단 들어가 보자. 


들어가자 바 자리에 사람들이 쭈욱 앉아 있고, 한쪽 벽면엔 TV가 켜져 있습니다. 모두 라면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네요.  

"1명이요"

"도오죠~"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았습니다. 

바의 넓은 쪽엔 스타일 좋은 젊은 남녀 3명과 혼자 온 것 같은 남자 하나, 그리고 제 뒤를 이어 슈트를 입은 남자 한 명이 들어와 제 옆 옆 자리에 앉습니다. 바가 적당히 찼습니다. 

바에서 서빙을 보는 직원 1명, 주방에 1명 이렇게 단 2명이 가게를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모두 자신의 식사와 할 일에 집중하고 있어서, 사진은 몰래 샤샤샥

일단 메뉴를 받아 뒤적 뒤적합니다. 뭐 먹지 뭐 먹지.... 뒤적뒤적 몇 번 앞뒤로 살펴봅니다. 

저는 고깃 국물에 약하기 때문에 돈코츠는 안되고, 미소... 미소를 먹어야 하는 것인가...

이 '자가제'뭐시기 하는 이건 뭐지? 아... 번역기 꺼내야 하나. 

그렇지만 여긴 너무 로컬이야. 로컬인척 하고 싶어 나도. 

그 와중에 갑자기 내 옆의 남자가 

'카레' 

라고 해버렸습니다. 

' 하이!'

그러자 저도 모르게

'와찌모 카... 카레 오네가이시마쓰.'

'하이!'


아.. 이... 이러려던 것이 아니었는데...;;

말렸다....!

그래서 이걸 먹게 되었습니다. 하아...

겁내 빠르게 카레면이 나왔습니다. 

스파이시 카레 마제.. 소바.


으음?...?음?음?
고기와 계란 노른자와(흰자는?) 야채, 양파 다진거...에 

'잘 섞어서 드세요.' 

'네, 네.' 

옆자리 남자는 능숙하게 섞어서 먹기 시작합니다. 

한 젓가락 들어 섞어봅니다. 면은 확실히 자가 제면이네요. 특이합니다. 쫀득하고 넓적한.... 

비... 비.. 비빔 칼국수?


아니 내가, 오모테산도에서 비칼을 만나다니...??


'마요네즈도 뿌려 드세요' 

직원분이 옆 남자와 제 앞에 각각 마요네즈 병을 놓아줍니다. 

옆 남자가 또 능숙하게 뿌려 먹습니다. 

저... 저도 뿌직 뿌직 뿌려봅니다.  

아니, 진짜 이 남자의 페이스에 말려버렸어?!


몰라요. 일단 뿌직뿌직 뿌립니다. 

음... 카라이라고 쓰여있었는데. 정말 카라이의 ㅋ 자도 없어. 그냥 안 매워요. 

아.. 이게 이게 무슨 맛이지 싶은데요, 그 ㅋ은 역시 카레의 ㅋ인가... 

전체적으로 쫄깃쫄깃한 카레 비빔국수입니다. 그리고 좀 짜요.

마요네즈를 넣으니까 좀 덜 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짭니다. 

카레는 인도에서 중국, 한반도 북부에 막 도착한 대승불교 같은 맛입니다. 

뭐 독특하고 짜고 맛있습니다. 


맛이 익숙해지니까 이제 슬슬 먹으면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관찰합니다. 

아... 스타일 좋은 남녀 3명은 일행인 것 같은데 서로 한 마디도 안 하고 각자 시킨 제각기 다른 메뉴를 먹으며 TV를 봅니다.  다들 말이 없습니다. 그저 후루룩 면을 먹고 TV를 한 번  봅니다. 

후루룩, 슬쩍. 후루룩. 

TV에서는 도쿄 올림픽 경기장을 짓는데 지반이 어떻고 그래서 주변 시의 재래시장 지하가 물이 잠기... 뭐 그런 내용인 것 같은데 저도 다 알아듣는 것처럼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해봅니다. 

'나 쪼금은 알아들어'라는 느낌으로 슬쩍 TV를 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그들처럼 저만의 식사를 합니다. 


갑자기 옆 남자가 말합니다. 

'고항' 

'하이~' 

서빙을 보는 분이 밥을 떠서 그에게 한 그릇 건넵니다. 선불로 비용을 냈으니, 밥은 무료인가 봅니다. 

저는 천천히 면을 오물거리며 옆 남자를 흘끔거립니다. 

그는 남은 카레 소스에 밥을 쓱쓱 비벼 먹고 라멘 그릇을 깨끗이 비웁니다. 

그리고 그릇을 테이블 위쪽에 올려놓더니 훌쩍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 가버렸습니다. 

곧이어 스타일 좋은 3 총사도, 저 끝에 앉은 남자도 가버렸습니다. 

이제 가게는 마지막으로 들어온 아저씨와 저 두 사람만 남았습니다. 

아 남겨져 버렸어. 

'아... 노 스미마셍. 고항오;;' 

'하이' 

'아... 노... 스코시 오네가이시마쓰..'

'아, 스꼬시?' 

'하.. 하이'

그래서 밥을 반공기 받았습니다.

짜다. 짜니까 소스에 밥을 비벼 먹자.


남은 밥을 소스에 비벼 냠냠 먹습니다. 

약간 라구 카레 같은 느낌. 카레에 고기가 엄청 많아서 밥을 비벼먹으니 꽤 고소하고 맛있습니다. 

안 먹었으면 큰 일 날뻔했네.

그렇게 한 그릇을 다 비웠습니다. 


이야. 다 먹어버렸네.


찬찬히 차가운 차를 마시고 멍하니 TV 바라봅니다. 

같이 와도, 혼자와도 각자의 식사를 하고 제갈길을 가는 이 정류장 같은 라멘집에서 

저는 점심 한 끼를 잘 먹었습니다. 

외롭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았어요. 

이런 내성적인 식사를 위해 저는 일본에 온 것입니다. 


타베로그 주소는 여기


茂司 (シゲジ)

03-3404-5858

東京都港区南青山3-8-3

http://tabelog.com/tokyo/A1306/A130602/13170172/dtlrvwlst/37229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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