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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Aug 23. 2017

[동아시아면류학說]대전 원미면옥

'그런 게 아~니~여어...'라고 충청도 양반이 고개를 저었다.

제조업에 종사 중인지라 공장 휴무에 따른 여름휴가가 5일이 있었습니다.

어디든 멀리 가고 싶었으나 돈도 기력도 없어서 대전에서 교수님을 하고 계신 학교 선배분을 당일치기로 방문하기로 합니다. 

그는 공자의 도를 숭상하는 한문학자로 대전 토박이. 
이번 여행은 평생의 폭식 동반자 오리 씨와 함께하였습니다.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아서 2시간 걸리는 무궁화호를 탑니다. 단돈 1만 800원
무궁화호의 정겨운 손잡이

2시간을 덜컹덜컹 신나게 달려 대전에 도착. 그 무궁화호는 계속 달려 부산으로 갔겠지요.

대전역 동편으로 나가자 대전 사대부 선배가 (이하 백공자)가 기뻐하며 우리를 맞아 주셨습니다.

오리 씨와 저는 백공자의 차에 탑승, 본격적인 먹투어를 시작합니다.


-뭐 먹을래?

-대전의 괴식이요.

-냉면 먹을래? 냉면에서 발 냄새를 느낄 수 있어.

-... 네?

-진짜야. 닭 육수 냉면인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닭국물인데 평타는..

-아~니~여어어어...

백공자는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니들이 몰러서 그런겨...생각하는 그런 거가 아니여...

그는 느긋하게 차를 몰아 옥천방향의 원미면옥으로 우리를 데려갔습니다.

면허를 딴지 4년이 되었다는데 초보처럼 느긋하게 탈탈탈탈...

사대부답습니다.


전통의 맛집이지만 묘하게 가건물

동일한 상호의 집이 나란히 있습니다.

아들들이 갈라져서 영업한다고. 어딜 가나 집안싸움이 문제인 건가. 


백공자가 목소리를 낮춰 말합니다.

-저쪽 집은 냉면에서 쿰쿰한 발 냄새 맛이 더 나서 다른 메뉴가 잘 나간대. 근데 이 집은 괜찮아. 그래서 이 집만와.


네...? 아니 딱 까놓고 원래 음식에서 발 냄새가 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검은 소 흰 소도 아니고 목소리 왜 낮추는데요?


암튼 추천한 안쪽 집으로 들어갑니다. 

흔한 오래된 집에 있는 흔한 오래된 사진
면수를 줍니다. 

음... 따뜻한 물을 주는데 면수인지 보리차인지... 암튼 일단 마시자. 

저는 호기롭게 비냉, 오리와 백공자는 물냉을 시켰습니다. 

계란지단이 수북하게 올라와 있는 비빔냉면

제 음식이 먼저 나왔습니다. 계란 파동이고 뭐고 계란 반쪽에 지단까지 수북하게 올라와 있고 

깨 많이, 오이채, 닭 삶아서 찢은 것, 양념장, 메밀 함량이 적어서 칡냉면에 가까운 면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물냉면에도 지단이 수북

물냉면에는 동일한 구성에 고춧가루와 검은 육수(닭육수라더니 간장베이스인가봅니다)가 담겨져 있습니다. 

백공자말로는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대파를 크게 썰어 고춧가루로 무친 파 양념장을 넣어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오리 씨는 일단 그냥 버전으로 먹어보았습니다. 

아니 이렇게 재료가 많은데...

저도 제가 시킨 비빔냉면을 잘 비벼서 한 입 가득 먹어봅니다. 


근데... 비볐는데.. 비벼서 막 먹었는데 

아무 맛이 안나.

뭐지. 이거 뭐지.


왜죠? 왜 때문이죠? 이렇게 양념장이 많은데 왜 맛이 안나죠? 왜죠? 

저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무미야 말로 충청의 소울인가... 보통 저는 비빔국수류에는 식초도 설탕도 겨자도 넣지 않는데 이건 도저히 추가하지 않고서는 먹을 수 없는... 오묘한 무미... 이 맛의 부재... 재료가 이렇게 많은데 왜 맛이 안나! 

아니 왜????


저는 커다란 혼란에 빠진 채로 오리 씨의 물냉을 먹어 보았습니다.


아니 이건 또 뭔가.

이 쿰쿰 할랑 말랑한 간장 육수는 뭐지?

찹찹찹 국물을 머금고 있다가 제가 웅얼거렸습니다.


-이거... 장조림 국물에 물을 타서 육수 낸 거 같아. 


그러자 오리 씨가 무릎을 탁 치며 말했습니다.

-맞아! 그거다. 


그렇다면 닭은 어디 간 것인가. 닭 육수는 어디 가고 간장 맛만 나는가?

이 모든 맛이 추우욱 빠진 건조한 닭 고명의 진짜 맛은 어디로 갔는가?

파 양념을 추가해도 연한 간장 국물의 맛은 변하지 않고 장조림...장조림 맛이야 이건...이말만 되뇌이게 되는

아 뭐라고 설명이 어려운 맛입니다. 


오빠.... 이거 뭐죠...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대전의 괴식 저력인가요...


암튼 이렇게 서울 촌년 두 명은 혼란 속에서 대전 괴식 경험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백공자는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워냈습니다. 양이 많고 충격이 너무커서 저는 남겼습니다. 


혹시 경험하실 분은 서울에서 먼저 옥천 냉면을 드시고 가보세요. 맛이 유사합니다. 

진주 냉면하고는 달라요. 많이 다릅니다. 

공간이 있어요. 맛에 공간이...

기둥 뒤에 공간이 있는 그런 겁니다...


그 뒤로 적산가옥 카페 안도르, 대전 시장에서 콩튀김 쇼핑, 성심당, 한남대 선교사 지역, 로컬 두부전골집(여긴 디폴트가 칼국수 사리야...)등을 방문했지만 

원미면옥의 충격이 너무 커서 리뷰가 불가합니다. 사진만 보세요. 




아 원미면옥의 무미를 채워준 너 성심당.
 케이크 부티크의 위용 
기승전성심당. 레알 레알 위너
대전엔 오로지 성심당(고만해!)
방문 가능한 모임 종류가 너무 확정적이야. 범접할 수 없다. 
지방 제과점의 저력. 엄청 수준 높은 케이크들이었음
황금 소보로. 지역색이란 이런 것이다. 
멋있다...
그리고 대전 사람들만 먹는다는 도시락 반찬 콩튀김을 시장에서 한 봉지 사왔습니다. 



ps: 대전 개인택시 이름은 '양반 택시'

대전시 공용 자전거 이름은 '타슈


타슈라니. 제목학원 영재들이 사회에서 암약하고 있구나...


이름이 타슈인 주제에 4인가족 이미지를 쓰면서 일코하지마요. 더 드립질을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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