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독서를 좋아하는 제자가 있다. 주마다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건만. 선생의 고장으로 몇 달 만에 재회했다. 그사이 지나친 녀석의 생일 선물을 대신해 다비드 바그너의 《삶》을 건넸다. 첫 장을 펴자마자 녀석이 피식거린다.
“??”
“여기 좀 봐요.”
손가락으로 가리킨 문장은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신문을 보기 시작한다. 모기들은 왜 빗속을 날아다닐 때 빗방울에 맞아 죽지 않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기사를 읽는다. 그것들이 어떻게 죽지 않고 사는지 미처 다 이해하기 전에…」
“저도 이 생각 자주 했어요.”
“너도? 나도.”
비가 내릴 때마다 비슷한 의문을 품었는데, 인류 공통의 수수께끼였구나. 지금도 엘리베이터에서 모기라든지 나방 따위를 만나면 놈들에게 묻는다. 기분이 어때? 날개 달린 것들이 날것을 타면 무슨 느낌이 들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질문을 늘어놓자 아이가 개구진 미소를 짓는다. 왜냐고 물으니,
“그렇게 다양한 표정이 있는 줄 몰랐어요. 종종 웃어주세요. 보기 좋네요.”
그 말이 퍽 마음에 들어, 머릿속 한구석에 고이 접어두었다. 살아있어 다행인 날은 이토록 갑작스레 찾아온다. 연명하듯 죽음에서 삶을 꺼내 먹고 있지만, 전에 없이 괜찮은 요즘이다.
image_©Cecilia Reeve
벌써 삼사 분째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 사라져 버릴 기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사라져 버리고 전화기를 꺼 두는 것이다. 다음다음 집에 사는 여자가 뒤에 아이용 보조의자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우리는 서로 미소를 짓는다. 전화기가 어디 있나 찾다가 바지 뒷주머니에 있는 걸 발견한다. 하지만 전화기를 꺼 두는 대신 장기이식 센터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가 왜 여태 안 오는지 묻는다. 틀림없이 금방 도착할 거라며 전화기 목소리는 나를 안심시키려 애쓴다. 전화기를 손에 든 김에 만약 잘못될 경우 미리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던 친구들에게 문자도 보냈다. ‘지금 병원에 새 간을 얻으러 감’이라고 적어서. 하지만 실제로 보낸 문자를 몇 주 뒤에 내 전화기 발신 항목에서 다시 보니 이렇게 적혀 있다. ‘지금 병원에 새 삶을 얻으러 감’.
* 독일어에서 간(Leber)과 삶(Leben)은 철자 형태가 비슷하다.
_David Wagner 《Leb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