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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by 성냥팔이 소년


아침까지 계속해 비가 내렸다. 먼지잼으로 흩날리던 빗줄기는 는개와 안개 사이를 오가며 브즈러니 거리의 피부를 적시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바다 냄새가 났다. 물고기의 하품처럼 비릿하고도 아련한 공기가 비강을 타고 내 안에 스민다. 각막을 어루만진다. 덕분에 눈에 비치는 장면 하나하나가 박제해두고 싶을 만큼 아름답게 보였다. 아쉬운 대로 손가락으로 카메라를 만들어 찰칵, 찰칵. 각도를 비틀어 찰칵. 언제나 그렇듯 세 컷만을 담아 머릿속에 심어둔다.


계절의 막차를 타고, 목이 꺾인 능소화들이 통꽃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비에 젖어 더욱 처연해 보였다. 그 앞에 어떤 노인이 쪼그려 앉아 한참을 응시한다. 휴대전화를 꺼내 한 컷 한 컷 신중히 촬영한다.


나도 나이가 들면 저런 모습이겠지. 헤지지 않는 낭만과 늙지 못하는 마음을 품은 철없는 사람으로 마감하겠지.


그가 떠나고 같은 자리에 섰다. 그가 되어 같은 장면을 바라보았다. 잠시 망설이다, 죽어가는 꽃잎 하나를 주워 사무실로 향했다. 마지막 잎새일지 모를, 뜨거웠던 한여름의 잔해를 품에 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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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_©Seong Ry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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