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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없는 계절

by 성냥팔이 소년


맞은편 주택 3층에 중국인 대가족이 산다. 옥탑방 구조라 옥상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중계된다.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적나라하다. 명절이면 그곳에 일가친척이 모여든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내 방 창문을 사정없이 두드린다.


우연히 나의 저녁과 그들의 잔치가 겹쳤다. 꺄르르 웃어가며 회포를 푸는 목소리들이 찬 대신 밥술 위에 오른다. 때문인지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앉아 있는데도, 가족들과 단란하게 식사하는 기분이 들었다. 썩 나쁘지 않았다. 매달아 놓은 굴비를 보며, 짠맛을 연상하는 자린고비의 처지가 되고 말았지만.


상을 물리고 창가에 기대 차를 들었다. 지난해 보았던, 한발 한발 걸음마를 배우던 아이는 다리에 모터를 단 것처럼 뛰어다니기 바빴다. 부지런히 녀석을 쫓는 여인은 아마도 엄마겠지. 그사이 또 하나의 생명을 품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서 똑같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게 된 자연의 섭리.


나 역시 저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고자 했다. 선택한 배우자를 아껴주고, 나를 닮은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 주려던 소망. 하지만 운명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며 나의 삶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폐허가 된 마음으로는 어느 누구도 만날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이런저런 자리를 마련해 주는 지인들에게 한사코 묻는다. 진정 가능하다고 믿는지. 한결같이 답하기를 시작이 반이란다. 그 반, 반쪽밖에 채울 수가 없어 문제인 것인데…


남겨진 여지에 중독되지 않으려면, 어디까지 긍정해야 할까. 희망과 정신승리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저 멀리 아이가 나를 발견하고는 배시시 웃는다. 고사리 같은 손을 펼쳐 낯선 이를 향해 흔든다.


‘아가야, 그렇게 아무한테나 웃어주면 세상 살기 고달프단다.’


한 발짝 물러나 시야 밖으로 숨어버릴까 했지만, 어린 것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가만히 손을 들어 아는 체를 해주었다.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제 어미에게 쪼르르 달려가 매달린다.


돌연, 안겨본 적도 없는 그 품이 그리웠다. 돌아갈 곳도 없는 주제에 느끼는 이 뿌리 깊은 향수병. 그렇게 환상통처럼 자리한 빛바랜 노스탤지어.




image_©Jeff Stanford



나는 붓다의 수행 중 방랑을 가장 사랑했다 방랑이란 그런 것이다 쭈그려 앉아서 한생을 떠는 것 사랑으로 가슴으로 무너지는 날에도 나는 깨어서 골방 속에 떨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강물 냄새가 난다

_김경주 <내 워크맨 속 갠지스>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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