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만날 때마다 죽고 싶다고 했다. 녀석이 받은 상처의 깊이를 알기에, 함부로 조언할 수도 위로할 수도 없었다. 그저 원할 때마다 함께 책을 읽는다.
“언제쯤 죽게 될까요?”
“나도 죽고자 하던 때가 있었지.”
“지금은 살고 싶어요?”
“아니.”
“그런데요?”
“너무 바빠서 죽을 새가 없네.”
“크크큭-”
웃는다. 잠시나마 스틱스 강물에서 발을 빼고, 별것도 아닌 농담에 자지러지게 웃는다. 제 나이답게 명랑한 표정. 다행이었다. 그래도 웃을 수 있다니.
그때의 나는 웃지 못했다. 말을 잃었다. 죽거나 미치거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아직까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미치광이라는 증거겠지.
수업을 끝내고 버스 정류장까지 아이를 데려다주었다. 걷는 내내 녀석의 얇은 외투가 신경 쓰였다. 소매 밖으로 흘러나온 두 손이 빨갛게 얼어있었다. 녹여주고 싶었다. 가져와 나의 주머니 속으로 포개어 넣었다. 우습게도 아이의 손이 더 따스했다. 눈사람이 산사람을 녹이려 들다니. 멋쩍어하는 나를 보며 다시금 아이가 웃는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깍지를 낀다. 맞닿은 살갗에 금세 온기가 돈다.
녀석이 관심도 없는 책을 핑계로 나와 만나려는 까닭을 알 것 같다. 아이는 끝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눈이 녹으면, 봄이 오듯이.
image_©Holly Warburton
그날 눈사람은 텅 빈 욕조에 누워 있었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그는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자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었으며 죽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었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_최승호 <눈사람 자살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