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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삼룡

by 성냥팔이 소년


수업 준비를 마치고 창가에 앉아 가져온 책들을 꺼내 들었다. 장 그르니에와 존 버거, 조르주 페렉의 책들을 차례로 읽었다. 눈을 감고 먹어치운 내용들을 되새김 하려던 찰나― 우당탕, 멀리서부터 발 구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일까 돌아볼 새도 없이, 솜뭉치 하나가 나를 껴안는다. 품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배시시 웃는다. 제자 S였다.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 준다. 성냥갑만한 병풍 책이었다. 나를 위해 만든 시집이란다. 펼쳐보니 삐뚤빼뚤한 글씨로 자작시를 적어놓았다. 평소보다 공들여 쓴 티가 났다. 태 못지않게 내용도 훌륭했다. 청출어람이라 했던가. 녀석의 머리를 여러 번 쓰다듬어주었다.


아이들의 글은 꾸밈이 없다. 대신 진심이 담겨있다. 나의 글에는 없는 것. 순수한 마음. 문득 순수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순수한 적이 있던가, 몰라서 그런 것이라면 배워야 하나, 배워 알게 된 순수가 과연 순수할까, 영원히 순수한 사람과 처음부터 어른인 사람 중, 누가 더 불행할까.


“선생님 책은 언제 나와요?”


“글쎄다.”


“왜요? 왜요―”


“내가 좋은 것이냐, 내 글이 좋은 것이냐.”


“둘 다요.”


“무엇이 먼저냐.”


“아무렴 어때요.”


“그러게 말이다. 내가 좋아 글이 좋든, 글이 좋아 내가 좋든, 좋은 게 좋은 것인데… 나는 왜 굳이 따지려 드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네??”


“더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짓말― 그짓말쟁이.”


사실 쓰기보다는 읽기가 좋다. 읽기보다는 듣기가 좋다. 듣기보다는 사색을 좋아한다. 괴괴한 침묵에 안겨, 홀로 순간 사이를 부유하는, 나만의 유희를 어떠한 행위보다 좋아한다. 한데 사색을 하면 할수록 더없이 쓰고 싶어진다. 가슴에 고인 것들을 토해내듯 끄적거리게 된다. 다시금 쓰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쓰기, 읽기, 자신 안에서 뒹굴기.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나는야 벙어리 삼룡.




image_©具本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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