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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감독의 서사가 만든 냉정한 공감

AI 생존자의 디크리에이션 역량 하나, 프라이밍 공감

by 김경묵

서사를 풀어내는 팀과 스포츠 경기를 하는 팀의 차이가 공감으로 증명되고 있다.


불꽃야구 21회를 시청했다. 상대 팀인 서울고에는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4명이나 있고, 어려운 승부가 예상되는 쉽지 않은 팀이다. 5회 초 0:1로 뒤지는 상황이 됐고, 김성근 감독의 승부를 영상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불꽃야구팀 마운드에는 130km를 간신히 넘는 유희관 투수가 던지고 있다. 비록 1 실점을 했지만, 잘 던지고 있었다. 원 아웃 1루 상황이 됐고, 김성근 감독이 마운드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유희관 투수를 교체했다. 승부처라고 판단한 김성근 감독이 빠르고 과감한 선택을 한 것이다. 화면에는 마운드를 내려오기 싫은 유희관의 아쉬운 표정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그리고 등판한 이대은 투수가 5회 초를 쉽게 막아냈다. 이어진 5회 말 공격에서 대타를 투입했다. 이 또한 빠른 선수 교체였다. 그렇게 5회 말에 2:1로 역전에 성공했지만, 경기 결과는 2:3으로 패배했다.


5회 내내 상황이 변화되는 장면마다 김성근 감독이 고뇌하고, 화를 내고, 박수를 치고, 고개를 흔들고 끄덕이는 모습을 순간순간 짧게 짧게 화면 사이사이에 끼워 넣었다. 선수들이 경기에 몰입하는 표정 또한 긴장감 있게 잡아냈다. 관중들이 경기에 집중하고 탄식하고 환호하는 모습 또한 놓치지 않았다. 단 한 회에 경기장 안에서 드러난 감정들을 모두 잡아내고 모두 살려낸 영상이었다. 감독의 승부사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 5회 상황의 시작과 끝을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하기에 충분한 편집이었다. 총 9회가 이어지는 야구 경기에서 5회만 똑 띄어 내서 한 편의 드라마로 완성한 것이다.


거의 35분 정도의 긴 시간을 할애한 편집이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청자에게 서사적 몰입감을 제공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1주일 후(23회), 다음 팀과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고 승리를 독려했고, 이겼다. 그렇게 연패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시청자에게 불꽃야구만의 서사를 이어가게 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불꽃야구를 보는 내내 스포츠경기를 시청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 편의 서사를 공감하는 야구경기를 시청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불꽃야구가 주간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가 이런 느낌인가. AI 생존자가 갖추어야 하는 디크리에이션 역량의 하나인, 프라이밍 공감과 닮아있다.



#제목사진=스튜디오C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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