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매출로 증명하세요

by 임케빈

오랜만에 브런치에서의 끄적임이다. 누군가에게 '나 이런 생각으로 이런 일을 이런 목표로 이런 결과를 내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결국 결과, 즉 매출로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 매거진은 결국 일에 과정은 필요 없고 매출로 증명해 내야 하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그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한 매거진이다. 결코 과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내가 기억하기 위해. 비록 그 끝이 실패여도 내가 흘린 땀방울을 내가 기억할 수 있도록.




올해 1월 마케팅과 디자인을 합친 오묘한 팀이었던 우리 팀은 결국 대부분의 업무를 토하듯 분리해 내고, 그 모든 것을 감당하던 나라는 존재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렇게 모든 업무를 벗어 던지고, '전략기획팀'이라는 본래의 취지에 맞게 기획팀으로의 첫 깃발이 꽂힌 순간이었다.

난 나를 증명해 내야 했다. 빠르게 출판할 것들을 찾았다. 기존 고전문학에서 특이점이 있는 것과, 단순 독서 노트에 독서법을 더하는. 그렇게 특별할 것 없지만, 그렇다고 망하지도 않을 것 같은 적당한 기획들을 기획서에 욱여넣었다. 판매 채널을 늘리기 위에 펀딩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펀딩과 서점의 구매층이 다르다는 나름대로의 확고한 논리적 받침이 있었다. 근데, 기획이라는 업무에서 너무 오랫동안 멀어져 있던 걸까? 펀딩은 처참하게 망했다. 몇 주간 노력했던 디렉팅들이 수포로 돌아갔다. 애써 태연하게 목을 가다듬었다. 열심히는 했지만 최선은 아니었다. 자신은 있었지만, 기고만장하진 않았다. 끝을 알 수 없는 내리막길의 출판 시장은 적당한 책에는 어떠한 자비도 베풀지 않는 곳으로 변해 있었구나. 얼른 펀딩 실패 원인을 분석한 후, 보고서로 남겨두고 모든 것을 다시 백지화했다.

이 매거진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 잘난 줄 알고 입만 나불대던 내가, 큰 코를 아주 세게 다쳐 어디로 운전대를 돌려야 할 지 모르겠는, 길을 잃은 내 이야기로부터 말이다.




일하는 과정이나 프로세스 등은 전혀 보고하지 않고 있다. 아니,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나의 방식대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란다. 알아서 나의 프로세스를 만들어 가란다. 인력 충원이 필요하면 그것 또한 원하는 방식으로 해주겠단다.

아무것도 없는 20평 집도 하나하나 내 입맛에 맞춰 꾸미기 어려울 것인데, 500평짜리 빈 집이 주워진 셈이다. 어떤 가구로, 어떤 색으로, 어떤 향으로 이 넓디넓은 공간을 채워야 될까? 더군다나 이 공간은 매출이라는 평가를 필연적으로 받게 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떻게든 증명해 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회사에서 매출을 내기 위한 발버둥이 아니다. 나라는 사람을 나에게 증명해 나가는 과정인 거다.




있던 원고로 끼적끼적 되도 않는 애드온 혹은 DLC 판매는 그만둬야 할 터다. 우리 팀, 나만의 작가풀이 필요하다. 이것이 반년을 잡아먹는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작가풀을 만드는 것은 세가지 업무로 루틴화한다.


1. 인플루언서 사고초려 전법.

이 전법은 저자로 모시고 싶은 인플루언서, 교수님께 최대 3번의 출간 제안을 하는 것이다. 거절 답장이 온다면 제안은 거기서 끝나지만 명절 등 특별한 날에 연락을 하기 위한 데이터베이스로 넘어간다. 제안 횟수가 거듭될수록 좀 더 명확한 기획을 전달할 예정이다. 처음엔 이런 책 내는 거 어때? 정도의 텍스트로, 그 다음에는 기획서로, 그 다음에는 목차까지 짠 기획서로 점점 디벨롭해서 전달할 거다. 3번 동안에도 거절 의사조차 없다면, 지금까지 죄송했다고, 책 선물을 드리고 싶다고, 마지막 네 번째 메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마지막 메일까지 답장이 없다면 이 예비 저자는 따로 특별한 날 메일을 보내는 데이터베이스에도 남기지 않는다. 이렇게 하루에 한두 명씩이라도 계속 쌓아나갈 것이다.


2. 브런치 신인 작가 발굴.

불과 5년 전만 해도 브런치는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이 아니라는 느낌으로 인기가 있었다. 하여 나를 포함한 출판 관계자도 꽤 신인 저자 발굴을 위해 브런치를 뒤지는 일이 많았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브런치에서 좋은 출판사와의 인연을 만든 것도 사실이다. 하여 브런치 신인 작가 발굴 루틴도 추가할 것이다. 확실히 브런치가 예전에 비해서 글의 퀄리티가 많이 줄었다. 블로그와는 다른 활자의 맛이라는 것이 예전에는 있었다. 허나 지금은 조금 정리된 블로그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진주는 존재할 것이기에, 열심히 조개를 뒤적거려 보리라.


3. 기업 자체에게 제안서 보내기.

책, 문학이라는 옷을 뒤집어 썼을 때 찰떡인 기업을 찾아야 한다. 현재는 *요즘의 시*라는 이름으로 여러 엔터에 소속 아티스트들의 시 모음집을 내자고 제안서를 작성해 보려고 한다. 시를 살리는 좋은 취지로, 수익금 일부도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환원할 수 있도록 잘 기획해 봐야겠다.



작가풀을 만드는 것 외에는 여행서를 기획 중이다.


1. 얼렁뚱땅 오사카, 얼렁뚱땅 교토

기존 여행서들은 틀에 박혀 있고 전혀 인터넷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도태되고 있다. 그 간극을 줄이는 넥스트 제너레이션의 여행서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더 이상 책을 메인으로 여행을 짜지 않음을 여행서가 인정해야 하고, 결국 온라인을 메인으로 하고 계획을 도와주는 서브의 포지션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얼렁뚱땅이다. 호텔, 맛집, 꼭 가봐야 될 곳 와글와글 적혀 있는 책이 아닌, 여기 이렇게 사진 잘 나온대, 이 음식점이 한국 사람이 유독 많이 간대, 빠칭고 여행 플랜 짜볼래? 와 같은 좀 더 개인적인 제안들을 하는 책이 완성되야 할 것이다. 틀에 박힌 거 말고. 독자가 알아서 플랜을 짤 수 있게 도와주는 책. 항상 이론은 좋다. 뚜껑을 열어봐야지.



매일매일 변화하는 마음, 기획 등 이곳에 남길 예정이다. 결과로만 보여야 되는 팀장이라 아무도 내 머릿속을 함께 들어주지 않으니까. 여기서라도 사유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