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생 이준호, 프롤로그
글과 누구보다도 가까운 일을 하고 있어서일까. 무언가를 읽고 쓰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이내 '일거리'로 치부될 때가 많다. 책과는 이따금씩 멀어져가고, 그 쉬운 웹툰조차 읽기 싫어진다. 그럴때면 으레 인터넷에 빼곡한 가십 기사들을 읽는다. 굳이 찾아 읽지 않아도, 자극적인 타이틀로 내 터치를 갈망하고 있으니, 이것보다 쉬운 글 읽기는 없다. 기사를 보고 있자면, 한 기사 걸러 하나씩 나오는 논쟁이 있다. 양극화가 될 대로 되어, 더 이상 접점이나 양보 혹은 존중을 찾아볼 수 없는 두 가지의 주제.
바로 '정치'와 '페미니즘'이다.
첫만남은 난장판이 된 기사 속 코멘트들이었다. '무지했다'고 손가락질해도 할 말이 없는 만남이다. '페미니즘'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성별을 가진 내가, 선뜻 가슴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머리로는 공감할 수 있는 주제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였다. 그래서 그들 말마따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이라는 것 안에서도 여러 여성 커뮤니티의 온도가 많이 다르다는 것도 그쯤 깨달았다. 그리고는 언젠간 동시대를 겪는 지금 남성의 아픔과 고통도 써내려가자고 마음먹었다. 이것은 미러링에 미러링을 더하는 것도 아니며, 그들이 주장하는 페미니즘을 깎아내리고 싶어서도 아니다. 내가 그것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하고, 생각해보려고 노력했듯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남성들의 생각도 조금은 투영해주기를 바라서이다. 여성 인권을 낮게 바라봤던 우리네 어른들의 이야기가 아닌, 뉴스에 자주 들려오는 성범죄자가 아닌. 같은 학교였고, 같은 반이였으며, 친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웃으며 인사하는 그런 사이였던 지금도 근처에서 서로의 시선이 닿고 있는 우리 이야기. '우리도 사실은 이런 어려움이 있었어.',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우리도 이런 트라우마가 있었어.'라고, 어떻게 보면 핑계. 또 어떻게 보면 오명 벗기쯤.
『82년생 김지영』은 사실상 '페미니즘' 소설이라기 보다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강요되어 왔던 성 고정관념과 성차별에 대해서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써내려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의 여성을 강렬하게 대변한 김지영이 있었듯, 이 시대의 남성을 대변하는 똑똑한 이준호를 만들고 싶었다. 목표성이 강한 글이 아니라, 정말 간헐적으로 업로드되겠지만, 브런치 속 이 골방에 찾아들어와 준호의 이야기에 공감 혹은 이해를 하는 한 명의 사람이라도 있다면, 이 매거진과 준호는 그 사명을 다하는 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