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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만에 마신 커피, 그 맛은?

by 라엘리아나

나는 하루 한 잔 꼭 커피를 마시는 커피러버였다.

커피사랑의 시작은 캡슐커피머신을 구매하면서부터였다. 캡슐커피머신을 구매하기 전에는 일주일에 3~4번 정도 커피를 사 마셨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커피 사러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가끔 배달로 마시기는 했지만 최소 금액을 채워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자주 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커피전문점과 비슷한 맛의 커피를 자주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 캡슐커피머신을 구입했다.


차선책으로 구입한 캡슐커피머신이었는데 생각보다 커피 맛이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집에서 간편하고 저렴하게 맛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으니 마시는 자연스럽게 횟수가 늘었고 어느새 하루 한잔씩 마시고 있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는 건 나의 소확행 중에 하나였다. 그렇게 캡슐커피는 나의 하루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다시 출근을 하면서 캡슐커피는 집에 있는 날만 마셨지만 하루 한 잔의 커피 루틴은 계속되었다.

점심 식사 후, 커피를 사 마시는 것은 당연한 일과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횟수가 더 늘지 않고, 하루 딱 한 잔만 마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틀 동안 커피를 마실 수 없는 상황이 생겼다. 매일 마시던 커피를 안마시계 되면 금단현상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살짝 걱정이 됐지만 다행히 커피 생각은 나지 않았다. 이틀 후부터는 마셔도 괜찮았지만 문득 이 참에 커피를 끊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결심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먹어서였는지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커피 생각은 나지 않았다. 향기로운 커피 향을 맡고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향기롭게 느껴지지도 않은 걸 보면 굳은 의지로 안 마신 것이 아닌 진짜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커피를 끊을 때가 왔구나 싶었고, 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커피를 끊은 지 20일이 지났을 무렵, 아무 느낌이 없던 커피 향이 향기롭게 느껴졌다. 조짐이 안 좋았다. 다음 날이 되자 향기로움을 넘어서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한 잔이 뭐라고 마실지 말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고작 커피 때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던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그냥 마셔!


이런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다.

인생 뭐 있어~ 하고 싶은 거 하고 즐겁게 사는 거지!

커피를 끊은 지 딱 25일 만에 심혈을 기울여 고른 캡슐커피를 마셨다. 며칠을 고민해서 마시는 커피이니 얼마나 맛있을지 기대하며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그러나 그건 나의 환상일 뿐이었다. 25일 만에 마신 커피는 특별히 맛있지 않은 평범한 커피맛이었다. 하긴 250일도 아닌 25일인데 무슨 큰 기대를 했던 걸까?


근데 웃긴 건 다음날이 되자 또 커피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내가 커피러버가 된 이유는 커피가 맛있어서였다고 생각했는데 습관의 힘이 더 큰 것 같았다. 이틀 연속 마시면 이전 습관 그대로 1일 1 커피 같아서 참기로 했다. 하지만 다음날 커피는 또 생각났고, 이번에는 참지 않고 마셨다. 근데 이번에는 평범한 커피 맛이 아닌 아예 맛이 없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람! 맛없던 여파가 컸던지 그다음 날은 커피가 생각나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 지낸 며칠 후, 친구를 만나자 자연스럽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게 됐다.

이번에는 다시 보통의 커피맛으로 되돌아갔다. 그날 이후로 커피가 매일 생각나지는 않아서 가끔 생각날 때만 마시고 있다. 더 이상 커피러버가 아닌 커피친구로 강등된 느낌이다. 하지만 커피에게 연인, 친구라는 역할을 부여하는 걸 보면 여전히 나는 커피를 사랑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존재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 새해에는 새롭게 사랑할 무언가가 생기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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