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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이야기

by 서효봉

루키가 희경을 향해 달려갔다. 그 앞을 수많은 강시가 가로막았지만, 무영과 민정이 온 힘을 다해 그들을 날려버렸다. 동혁과 준수, 루키가 희경을 데리고 재빨리 이동했고, 무영과 민정은 계속 강시들을 상대했다. 인재는 검은 얼굴을 향해 말했다.


“영감님! 도대체 왜 이러는 건가요? 민정이를 생각해서라도 정신 좀 차리세요. 제발!”

“날 먼저 건드린 건 너희들이야. 왜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도대체, 왜!”

“왜라뇨? 영감님 구하러 온 거라고요. 같이 가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내가 왜…. 내가 왜….”


검은 얼굴은 머리가 아픈 듯 얼굴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인재는 검은 얼굴 속에 잠들어 있던 다른 영래의 인격을 깨워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대체 어떻게?


민정이 강시들을 처리하며 검은 얼굴에 가까워지자 얼굴은 점점 더 고통스러워했다. 영래의 내면에 있던 인격이 민정을 알아보고, 살아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때 묵묵히 강시들을 상대하던 무영이 ‘항룡십팔장’이라는 최고의 무공을 펼쳤고, 강시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러자 하늘에 몰려왔던 검은 구름도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은하수가 제단 위에 걸렸다. 지금이다. 지금 모두가 제단 위에 올라…. 죽으면, 되는데…. 어떻게? 자결이라도 해야 하나? 사실 죽는 건 간단하리라 생각했다. 강시들이 몰려오면 그 자리에서 좀 잔인하긴 해도 확실히 죽을 테니까. 한데 지금은 일부러 안 죽이고 있다는 듯 상황이 흘러가니, 어떻게 죽을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서로를 죽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어떻게 그런 일을? 게다가 마지막 사람은 어쩌고?


검은 얼굴이 요동친다. 다시 형태가 돌아오고 구름이 몰려온다. 땅에서 강시들이 돋아난다. 핏빛 피가 쏟아진다. 그때 은하수 아래 제단으로 하얀빛이 생기더니 문이 열렸다. 다른 세계로 가는 문. 그 문에서 뜻밖에 거대한 뭔가가 튀어나왔다. 그 거대한 생명체는 바로 레드 드래곤이었다. 블루 드래곤에게 패한 레드 드래곤이 이 세계로 넘어 온 것이다. 인재는 그 드래곤을 보고 어떤 희망을 품게 되었다. 죽을 수 있다는 희망.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 인재, 민정, 동혁, 준수, 희경, 루키 그리고 무영은 제단에 올라 그 거대한 생명체가 강시들을 태워죽이는 걸 구경했다. 주변은 불바다가 되었고, 시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검은 얼굴은 괴생명체 출현에 당황한 것 같더니 스스로 쪼그라들어버렸다. 그리곤 그 아래로 영래를 뱉어냈다. 민정이 그 모습을 보고 외쳤다.


“할아버지, 제가 갈게요!”


그 순간, 번쩍하더니 제단으로 드래곤의 불길이 쏟아졌고, 하얀빛이 소설가들을 감쌌다. 눈을 떴을 땐, 지하 벙커였다. 인재는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폈다. 옆으로 동혁과 준수, 희경과 루키, 민정이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누워있던 무영이 천천히 눈을 뜨고 있었다. 인재는 다른 소설가들을 모두 깨웠다. 돌아왔다. 소설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그런데, 애초의 목적이었던 영래를 구하진 못했다. 엉뚱하게도 무영을 현실의 세계로 데려와버렸다. 무영은 이전 세계로 가야 하는데, 왜 여기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때, 문이 열리며 양 교수가 등장했다. 한 손에는 권총을 들고.


“오우! 이거, 예상 밖인데? 돌아온 것도 신기한데 저 인간까지?”


무영은 양 교수를 보더니,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전 세계처럼 움직이진 못했다. 양 교수는 그의 왼쪽 다리를 겨냥해 총을 쏘았고, 무영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시 문이 닫혔고, 자욱한 연기와 함께 방 안으로 가스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설가들은 의식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땅이 꺼지는 것처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더니 더 내려갈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 멈춰 섰다. 문이 열린다. 하얀빛이 쏟아진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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