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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린 문

by 서효봉

바로 어제 탈출한 곳에 되돌아왔다. 위험할지도 몰라 인재와 동혁이 먼저 지하 벙커에 들어가 상황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도착한 경찰들은 인재에게 신고한 거 맞냐고 묻더니 허위 신고는 범죄라고 경고하고는 가버렸다.지하 벙커에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야기 엔진을 가리키며 민정이 말했다.


“양 교수가 소설의 세계로 넘어간 것 같아요.”


인재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잉? 연료 없으면 문을 열지 못하는 거 아니었어?”

“미리 연료를 확보해 뒀겠죠. 우리가 잠든 사이.”


희경이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떨며 말했다.


“그럼, 놈이 우리 뇌에서 그걸 또 뽑아갔다는 말?”

“아마도 그럴 거예요.”

“으아, 당장 쫓아가요! 그놈의 뇌를 꺼내서 줄넘기를….”


루키가 흥분한 희경을 진정시키는 동안 인재는 선재에게 연료를 구할 방법이 있는지 물어봤다. 다시 소설가들의 뇌에서 뽑아내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야기 엔진의 연료는 한 번 뇌에서 뽑아내면 적어도 10일 이상 기다려야 다시 만들어져요. 지금 당장은 어렵습니다.”


동혁이 말했다.


“양 교수가 그것까지 노린 모양이군요. 그럼, 별수 없네요. 10일 기다려야죠.”


선재가 뒤이어 인재에게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야기 엔진이 내일이면 꺼질 텐데, 다시 작동시키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건 양 교수만 알고 있어서….”

“헐, 지금 바로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네, 지금 말고는 쫓아갈 방법이 없을 겁니다. 저분이 돌아갈 방법도 없을 거고요.”


다들 무영의 얼굴을 쳐다봤다. 무영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연료라는 게 어떤 거냐고 선재에게 물었다.


“하얀빛의 투명한 액체인데…, 양 교수는 그걸 소설가의 상상력이라고 부르더군요.”

“그럼, 혹시 이건가?”


무영은 품속에서 텀블러 크기의 대나무 통을 하나 꺼냈다. 뚜껑을 열었더니 안에 하얀빛의 투명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이건 개방파의 방주에게만 전해지는 보물 가운데 하나라네.”

“보물?”

“양 교수라는 놈도 이걸 보고는 깜짝 놀라더군. 그래서 혹시 이게 다른 세계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해 품에 지니고 다녔지.”

“그게 어떻게 그 세계에 있었을까요?”

“아마 오래전 개방파의 방주 중에 나처럼 다른 세계에서 온 인물이 있었나 보네. 개방에 전해지는 비급에도 얼추 비슷한 기록이 있는 걸 봤다네.”


인재는 무영에게서 대나무 통을 받아 선재에게 전해주며 말했다.


“선재씨, 준비 좀 부탁해요. 얼마나 걸릴까요?”

“아마 1시간이면 충분할 거예요.”


인재는 동혁과 준수, 민정, 희경 그리고 루키에게 연료도 준비되었으니 곧 출발할 것이라 말했다. 그런데 동혁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런데…. 인재 씨, 나는 이번엔 빼줘요. 솔직히 다시 가고 싶지는 않아요. 못 돌아올까봐 전전긍긍하는 것도 싫고.”

“아…. 네. 어쩔 수 없죠.”


소설가들에게 동혁은 빠진다고 이야기하니 다들 동요하는 분위기다. 그때 민정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 같이 가게 될 거예요. 틀림없이!”


선재는 이야기 엔진에 연료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지난번처럼 방의 다른 한쪽 문에서 하얀색 빛이 새어 나왔다. 5명의 소설가와 무영은 천천히 그 빛을 향해 걸어갔다. 그 광경을 구경하던 동혁은 잘 가라며 손짓했다. 건강하게 살아서 돌아오라고 인사했다. 그때 동혁의 왼쪽 발이 저절로 앞으로 쑥 나오더니 빛을 향해 끌려 들어갔다. 그렇게 모두 빛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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