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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사람

by 서효봉

사람이 죽었다. 피범벅이 된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주변을 경찰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신사는 경찰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에게 손짓했다. 신사와 경찰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현장으로 모두를 불러들였다.


“경감, 여기 이 친구들은 나의 새로운 팀일세.”


신사의 말에 경감은 인재와 민정, 희경과 루키에게 차례로 악수를 청했다. 다들 쭈뼛거리며 악수하고는 아무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하랴? 다른 세계에서 온 아무개라고 인사해야 하나?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민정이 입을 열었다.


“왓슨입니다. 홈즈를 돕고 있습니다.”


인재는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민정을 왓슨이라 부르고, 민정도 스스로 왓슨임을 사칭하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홈즈라니? 저 신사가? 왓슨, 아니 민정의 말에 경감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홈즈 씨의 친구라면 대환영이오. 잘 부탁하오.”


홈즈는 현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거 시작부터 난잡한 사건이구만.”


민정은 홈즈가 현장을 둘러보는 동안 경감에게 사건 경위를 물어보았다. 인재와 희경 그리고 루키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민정 주변을 서성거렸다. 홈즈가 증거수집을 끝냈다. 인재에게 이리 와 보라며 손짓했다. 인재는 홈즈 곁으로 가 그가 시키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홈즈가 루키를 불러 인재 앞에 서 있으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희경을 불러 문 앞에 서보라고 했다.


“음….”


홈즈는 10분쯤 생각에 잠겼다. 경감에게 3일 뒤에 자기 집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경감은 밝은 얼굴이 되어 말했다.


“홈즈 씨, 뭣 좀 건진 게 있을까요?”

“일단 와 보시죠.”


홈즈와 일행은 밖으로 나와 다시 마차를 탔다. 마차는 런던의 거리를 지나 베이커가 221번지에 도착했다. 셜록홈즈가 사는 하숙집이다. 인재는 어린 시절 코넌 도일의 셜록홈즈 시리즈를 읽으며 언젠가는 여기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올 줄이야? 그것도 셜록홈즈, 왓슨과 함께. 홈즈는 하숙집에 돌아와 난데없이 화학 실험을 시작했다. 30분 뒤 뭔가를 들고 급히 나가버렸다. 홈즈가 떠나고 인재는 비로소 편하게 민정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왓슨 씨, 어쩌다 왓슨이 되셨나요?”

“몰라요. 정신 차리고 보니 홈즈가 저보고 왓슨이라고 부르던데요?”

“넌, 아무리 봐도 왓슨처럼 보이지 않는데?”

“뭐,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왓슨이라 하니 저도 그냥 홈즈 아저씨랑 탐정 놀이하는 거죠.”


옆에 앉아 있던 희경이 민정에게 말했다.


“민정아, 근데 우린 이제 어떻게 하지?”

“글쎄요. 예전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일단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면 할아버지를 찾고, 엔딩을 맞이하러 가야 할 것 같아요.”


루키가 끼어들었다.


“근데, 동혁 씨랑 준수 씨는 어쩌지?”

“그 아저씨들은 항상 늦네요. 뭐, 어디 또 매달려 있거나 거지가 된 건 아닐까요?”


다들 민정에게 모여들어 질문을 퍼붓다 지쳤는지 잠시 조용해졌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홈즈가 나타나 말했다.


“왓슨, 그놈이 나타났네! 빨리!”

“알겠네. 서두르지.”


민정은 그놈이 누군지 왜 서둘러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대답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인재와 희경, 루키도 덩달아 바쁘게 챙겨 민정을 따라나섰다. 밖엔 마차가 서 있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지만, 마차는 성난 것처럼 거칠 게 출발했다. 30분쯤 뒤 도착한 곳은 대저택 앞이었다. 커다란 문이 열리고 마차가 안으로 들어갔다. 집사 같은 사람이 나와 일행을 반겼다. 다들 대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컸다. 높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민정의 키보다도 커 보였다.


일행의 뒤로도 사람들이 계속 들어왔다. 먼저 온 사람들이 흘러나오는 음악을 배경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뭔가 대단한 파티라도 하는 모양이다. 잠시 후, 사람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저택 2층에 나타난 사람을 쳐다봤다. 나이 지긋해 보이고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그 사람은 영래였다. 민정은 영래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할아버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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