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는 어떤 방에 누워있었다. 붉은 조명이 켜진 방에는 침대 하나에 거울 그리고 액자가 걸려 있었다. 처음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봤을 때 인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붉은 조명에 물든 인재의 얼굴도 얼굴이지만 자신의 등 뒤에 걸려 있는 액자 사진 때문이었다. 멧돼지가 노려보는 눈이었다. 그 눈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에 놀란 인재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겨우 용기 내어 일어나 방문까지 걸어갔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이번 세계는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무서움이 계속되었다. 왜냐면 조금 있다 요란한 방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군가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까지 들려왔다.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 이상한 물체가 나타났다. 그러니까 이건 귀신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의 어렴풋한 물체다. 그 물체 아니 그 귀신이 인재의 코앞에 다가왔다. 얼굴이 없다가 커튼처럼 머리카락이 열리며 창백한 얼굴이 나타났다.
“아저씨!”
“예? 네? 뭐?”
정신 차리고 다시 보니 민정이었다.
“놀랐잖아! 인마! 왜 그렇게 와? 문은 어떻게 열었고?”
“그냥 왔는데요. 뭘. 문은 여니까 열리던데…. 왜 화를 내요!”
“누가 화를 내!”
“겁 먹었구만, 쫄보!”
근데 왜 인재는 항상 다른 세계로 이동만 하면 민정을 가장 먼저 만나는 걸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먼저 만난 적이 없었다. 늘 민정을 먼저 만났다. 민정은 여유로운 상태였다. 좀 이상하다. 이거. 이상하니까 더 무섭네. 인재와 민정은 빨간 조명의 방에서 거실로 나왔다. 민정은 일어나 보니 거실이었다고 했다. 거실도 어둡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흰 조명이라 마음은 좀 편했다. 거실 한쪽으로는 베란다가 있었다. 창문을 보니 밖에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야, 여기 근데 너무 으스스하지 않냐?”
“그러게요. 공포 소설의 세계인가 봐요.”
“나 이런 거 정말 싫은데….”
“어른 맞아요? 정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인물이야. 쯧쯧.”
두 사람은 일단 전등 스위치를 열심히 찾아봤다. 어디에도 스위치는 없었다.
“뭐, 이런 아파트가 다 있어?”
“근데,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을까요?”
“다른 방에?”
“제가 다 찾아봤어요. 아까 아저씨 방이 마지막 방이었어요.”
“그럼 다른 층에? 일단 나가볼까?”
“나갈 수 있겠어요? 아저씨는 곧 기절할 것 같은데요?”
“무슨 소리야!”
인재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당당한 척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한 손은 초등학생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재와 민정이 나갈지 말지 이야기하는 사이 ‘딩동댕동’하는 소리와 함께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야밤에 방송이라니?
“아파트 관리소에서 알려드립니다. 친구를 찾으시는 분들은 지금 즉시 관리소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어떻게 되든 저희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빨리 오는 게 좋을 겁니다.”
인재는 방송을 듣고 다시 소름이 돋았다.
“무슨 방송이 이렇게 살벌해?”
“협박 같은데요? 빨리 안 오면 어떻게 하겠다는….”
나가야 했다. 방송이 거짓이라고 해도 계속 이렇게 있을 순 없으니까 말이다. 다행히 현관문은 쉽게 열렸다. 현관 신발장에서 비상용 손전등도 하나 찾았다. 아파트 복도로 나갔다. 역시 어두컴컴했다. 스위치 같은 건 없었다. 손전등에 의지해 겨우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띵동.”
“으아아악!”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