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죠?”
“나도 모르겠네.”
인재는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아무리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봐도 같은 결론에 닿았다. 인재는 사진을 민정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너무 놀라지 말고.”
그렇게 말한다고 놀랄 일에 놀라지 않을 리 없지만. 근데 민정은 생각보다 별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다른 소설가들이 그 사진을 보고는 ‘대박 사건’이라며 연신 놀라워했다. 무영은 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일까? 기억이 사라지기라도 한 걸까? 지금은 눈치를 챈 건가? 인재는 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승합차를 운전하던 동혁이 말했다.
“근데. 이제, 어디로 가죠?”
루키가 말했다.
“전기톱 들고 난리 칠 정도면 이야기가 절정에 닿은 거 같은데 엔딩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그 엔딩이 어디서….”
뭐, 아무도 모르는 게 당연했다. 누가 알겠는가? 그저 막연히 예상만 할 뿐. 승합차는 아파트를 빠져나와 도로를 달렸다. 밤이라 주변 풍경이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도시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아주 조용하고 불빛 하나 없는 도시. 도로를 달리다가 커다란 물체가 차에 철퍽하며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동혁은 깜짝 놀라 차를 세웠고 내려서 확인해 보았다. 잠시 후 차로 돌아온 동혁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노루가 죽었나 봐. 저기 쓰러져 있는데…. 겁나서 못 가겠어. 사람이면 어쩌지?”
준수가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불길한 소리 하지 말게. 내가 가서 보고 오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노루였다. 동혁과 준수는 차에 부딪힌 노루의 사체를 옆으로 치웠다. 조용한 밤, 어디선가 기계음이 들렸다. 뭔가 갈리는 것 같은 그 소리는 관리소에서 들었던 그 소리였다. 전기톱. 동혁과 준수, 인재와 루키는 얼른 차에 올라탔다. 희경이 차에 시동을 걸고 운전을 맡았다. 동혁이 소리쳤다.
“출발! 빨리 출발!”
루키가 소리쳤다.
“오, 마이 갓!”
차는 굉음을 내며 출발했다. 도로를 한참 벗어나 이상한 방향으로 향했다. 인재가 말했다.
“아니,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예요?”
겁에 질려 얼굴이 하얗게 된 희경이 말했다.
“말 시키지 마! 나 지금 제정신 아냐!”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운전 못 한다고!”
승합차는 조금 달리더니 그대로 울타리를 들이받았다. 하늘을 날았다. 허공을 달리다 바닥으로 추락했다. 승합차는 열 바퀴쯤 굴러 내려가 큰 바위 앞에 겨우 멈췄다. 인재는 피투성이가 된 채로 차 밖으로 기어 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지 살펴보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움직여지지 않았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린다. 전기톱을 손에 들고 가면 쓴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전기톱으로 차 문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에서 사람들을 한 명씩 꺼내 잔디밭에 눕혔다. 구조를 마친 사내가 가면을 벗었다. 영래였다. 영래는 의식을 잃은 무영과 민정을 슬픈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인재가 겨우 입을 열며 말했다.
“영감님, 영감님이셨군요.”
“인재씨, 부탁이 있어요.”
“영감님은 저만 보면 부탁을 남기시는군요. 제가 보시다시피 꼼짝도 못 하고 있습니다.”
“이 총으로 나를 좀 죽여줘요.”
“네?”
“난 이제 지쳤어요. 이 세계에서 온갖 악역을 다 맡으며 지냈어요. 이제 그만하고 싶어요. 민정이도, 민정이 아비도 찾았으니….”
“제가 어떻게…. 저는 못 합니다. 지금 그럴 힘도 없고요.”
“손가락만 움직이면 돼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죠? 이 세계에서 나는 나 자신을 죽일 수가 없어요. 빨리! 시간이 없어요. 그놈이 또 온다면 이제 방법이 없다고요.”
영래는 인재의 손에 총을 쥐여주었다. 팔은 겨우 들 수 있었다. 인재는 한숨을 쉬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총을 들고 영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엔딩을 향한 총알은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영래를 지나 뒤집힌 승합차로 향했다.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모든 게 날아가 버렸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