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루는 돌았다. 지구처럼 천천히 자전했다. 해루를 따라 제리도 그 옆에서 돌았다. 달처럼 해루 옆에 붙어서. 360도. 270도. 때로는 슈퍼맨인 양 몸짓하며 멀리 나아가기도 했다. 우주선을 처음 타 본 그들에게 무중력 상태는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런 해루와 제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미카가 말했다.
“해루, 해루, 정신 사나워, 부탁인데 가만히 좀 있으면 안 될까?”
“아저씨도 한번 해 봐요! 진짜, 재밌어요. 이거!”
미카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아몬드 봉봉의 우주선은 다섯 생명체가 지내기에는 너무 컸다. 그 규모를 굳이 설명하자면 도시에 있는 초등학교 정도의 크기라고 할 수 있다. 그 큰 공간에 생명체라고는 해루, 미카, 제리, 미스터 코너, 아몬드 봉봉 이렇게 다섯뿐이었다.
처음 이 우주선에 왔을 때 해루와 미카는 툭하면 길을 잃었다. 반면 제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찾아다녔다. 해루는 코너와 봉봉에게 혹시 와이파이 할 수 없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물었고, 당연히 대답은 ‘할 수 없다’였다.
사라져버린 슬리피를 찾기 위해 그들은 첫 목적지로 우주 시장 카르텔을 선택했다. 카르텔은 은하와 은하 사이의 경계선에 형성된 외계 생명체들의 시장으로 우주의 온갖 자원과 소문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코너 씨 말로는 ‘무슨 일이든 기회를 잡으려면 카르텔에 가야 한다.’라는 우주 속담이 있을 정도란다.
카르텔에 도착한 다섯 생명체는 우주에서 가장 큰 시장이 있는 ‘오리진’이라는 광장으로 갔다. 오리진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광장이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외계 생명체들로 가득 찬 시장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행성의 특산물과 자원을 홀로그램으로 띄워놓았고 지나가는 생명체들을 유혹했다.
카르텔에 자주 들리는 아몬드 봉봉의 말에 따르면 우주 생명체들은 암흑물질을 농축하여 만든 ‘디오’라는 캡슐을 돈처럼 사용한다고 한다. 대부분 안전을 위해 그걸 먹어서 뱃속에 저장한다.
예전엔 디오를 직접 주고받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부작용이 많아 요즘은 ‘디오시즌’이라는 우주 은행에 가입해 음성으로 결재하고 나중에 먹든지 토하든지 하여 정산한다고 한다.
봉봉의 말에 해루는 잠시 구역질이 날 것 같았지만, 겨우 진정하고 미스터 코너 씨에게 물었다.
“여기서 이제 뭐 하죠?”
“찾아야지. 그놈을.”
“어떻게요?”
“그건, 아몬드 봉봉이 알려줄 거야.”
그러나 아몬드 봉봉은 시장 물건에 정신이 팔려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코너 씨는 한숨을 쉬고는 해루와 미카, 제리에게
“봉봉이 정신 차릴 때까지 자유시간이나 갖자고. 2시간 뒤에 오리진 타워 앞에서 봐.”
통보를 끝낸 코너 씨가 돌아서려 하자 미카가 다급하게 불러세우며
“저기 근데, 저희는 그, 디오? 라는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하죠?”
“아, 디오는 행성별로 결재가 돼. 지구인이 여기 온 적은 없으니까 너희는 그냥 지구에서 왔다고만 하면 알아서 시리우스 이름으로 결재될 거야.”
“네? 그럼, 아무렇게나 막 써도 상관없나요?”
“그럴 리가. 행성마다 한도가 달라. 지구는 얼만지 물어보고 써야지.”
미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무슨 이야긴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물론 해루도, 제리도.
그들은 일단 배가 고파서 지구 음식과 가장 닮은 먹을거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피자 비슷하게 생긴 음식을 발견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 파는 악어 얼굴의 외계 생명체가 너무 무섭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고픔은 무서움도 이겨내는 법. 거기다 제리까지 그 음식을 먹자는 듯 난리를 부려 해루와 미카는 무섭게 생긴 생명체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저어, 이거 얼만가요?”
긴 주둥이의 외계 생명체는 갈매기처럼 끼룩대다 왼쪽 손목에 찬 시계를 터치하더니 해루에게 말했다.
“100 디오.”
“지구에서 왔는데요.”
“시리우스?”
“네, 네”
“처음이야?”
“네?”
“거래가 처음이냐고”
“모든 게 다 처음인데요.”
“그럼, 시리우스 110 디오 결재한다고 말해.”
“시리우스, 110 디오 결재…. 근데 왜 110 인가요?”
“디오시즌 수수료.”
해루는 게임 아이템 결재할 때 청구되었던 수수료가 생각이 나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튼, 그렇게 말로 결재를 하고 피자처럼 생긴 그것을 받아 광장 동쪽에 있는 식사 장소에서 먹기 시작했다.
비린내가 조금 나긴 했지만 먹을만한 피자였다. 해루가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입에 무는데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식탁 위에 있던 제리를 낚아채 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