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이야기를 통해 따뜻하고 건강한 세상을 꿈꿉니다.
엊그제 일이다. 저녁 무렵 고향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활기에
넘치셨다. 유모차에 의지하여 겨우 움직이는 정도인데 동네 마실 길에 막걸리 한 잔을 걸치셨단다.
그때 마침 전화를 건 아들에게 ‘기분이 좋다’며 너스레를 떠시는데 듣고 있는 나도 어찌나 좋던지
맞장구를 쳤음은 물론이다.
순간 고향의 막걸리를 떠올리자 오랜 기억 속의 희미한 추억들이 되살아났다. 읍내 양조장이며
그 집의 예뻤던 초딩 친구가 아른거리고, 술통을 자전거에 싣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구멍가게에
배달하던 아저씨도 생각났다.
자연스럽게 어릴 적 놀이터, ‘구렁목’ 끝의 구멍가게가 떠올랐다. 바로 배달된 막걸리를 그 가게에서
팔았기 때문이다. 그 구렁목은 포장된 아스팔트 길이 되어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졌고, 쪼깐이 엄마가
운영하던 구멍가게도 사라진지 오래이지만.
가게가 무슨 뜻인가 찾아보니 ‘가가(假家)’라는 말에서 ‘임시 건물’이라는 의미는 없어지고 물건을
파는 상점을 가리키는 말로 변음이 되어 오늘의 ‘가게’가 되었단다.
거기에 ‘구멍’이 붙었으니 쥐구멍, 개구멍이 연상되면서 ‘구멍가게’라 하면 옹색하고 비좁은 작은
가게를 말하는 것이렸다.
언제부터인가 도시가 재개발의 명목으로 아파트촌으로 바뀌면서 구멍가게도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구멍가게를 대신한 편의점이 엄청나게 생겨났다. 그것도 24시간 문을 열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알바생을 통해 ‘편리함’을 팔고 있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함께 살았던 흔적들과 애환들이 깡그리 사라졌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나를 거쳐 자식들로 이어지는 삶의 소중한 것들이 우리도 모르게
단절되고 흩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디 구멍가게뿐이랴. 20년 넘게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구멍가게를 찾아내고 그것을 화폭에
담아온 이미경 작가는 이야기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와 한 시대를 더불어 살았던 소소하고 소박한 존재들과 눈빛을 나눌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작은 속삭임이 자신의‘구멍가게’를 낳았다고.
그러면서 함께 한 시간만큼 마모되고 둥글어진 모서리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할지 모른다며 따뜻한 눈빛으로 구멍가게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구멍가게는 우리의 분신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돈과 편리함, 그리고 찬란한 겉포장에 눈이
어두운 우리의 시대가 구멍가게의 상실을 낳은 것은 아닐까.
위 아래 층에 누가 사는지 모르며, 부동산의 광풍을 쫓으며 살아가는 삭막한 도시 사람들에게 ‘이웃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던 사랑방’ 구실을 했던 구멍가게의 사라짐은 눈꼽만큼도 중요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다. 살아가고 누려야 할 많은 것들이 오로지 ‘사고파는
것’이 되어버린 절망의 시대 앞에 내가 움켜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헤아려보면 좋겠다.
찰나 같은 인생, 한 번 살다가는 삶에서 무엇이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구멍가게’는
어렵지 않게 우리네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다.
구멍가게의 작가는 덧붙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시간의 흔적이 있고 따스함이 있다고.
기억 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구멍가게로 가는 길, 모퉁이를 돌면 그곳에 소박하고 정겨운 행복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