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걱서걱, 흩어져 날리는 모래 같은 그녀. 잡으려 손을 뻗자 어느새 손 틈 사이로 빠져나가 마르고 건조한 눈빛으로 그를 멀리한다. 달려들면 사라질 듯 위태롭고, 멈춰 서면 다가올 듯 선명하기만 하다.
“그쪽한테 관심 있어. 이 감정이 어떻게 변화할지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내 생애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뭔가를 느꼈어. 그래서 잡고 싶어. 확인해 보고 싶거든.”
“그런데 어쩌나요? 당신 감정이나 확인시켜 주기 위해 자선을 베풀 의향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 건 혼자 알아서 해결하심이 어떠십니까?”
지금껏 단 한 번도 진심을 다해 접근해 온 여자들을 사랑한 적이 없다. 그런데 심장에 낯선 아픔이 몰려들었다.
이 고통을, 이 통증을 대체 뭐라 표현하면 옳단 말인가! 황홀한 통증이라 하던가!
서향의 소설 ‘통증’의 한 구절이다.
통증(痛症, pain)을 검색해 본다.
실제적·잠재적인 조직 손상과 연관된 불쾌한 감각적·감정적 경험이라고 되어 있다.
통증은 우리로 하여금 잠재적인 위험 상황으로부터 피할 수 있도록 하며, 손상된 신체 부위가 회복될 때까지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회피할 수 있게 한다고 설명을 이어간다.
그렇다. 통증은 단지 나를 괴롭히는 아픔을 뜻하는 부정적 언어가 아니라 오히려 나를 보호하는 선한 아픔을 뜻하는 아군임을 확인한다.
지난 화요일 오후부터 오른쪽 아랫배에 묵직한 통증이 몰려왔다. 살짝 눌러보니 제법 강한 아픔이 느껴졌다.
소화엔 문제가 없었기에 순간 떠오른게 맹장염이었다. 동네 병원에 들렀다. 초음파검사를 해 보더니 맹장이 부어있는 것 같다면서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을 소개했다.
병원을 옮겨 좀 더 정밀검사를 해보니 맹장염이 아닌 게실염이란다. 수술대신 약처방을 받았고, 진통 끝에 이제 그 통증은 오간데없이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여러 생각이 밀려왔다.
이러다가 ‘내 삶이 끝나는 것 아닐까’부터 ‘내가 살아있으니까 느끼는 자연스러운 아픔’까지 부정과 긍정을 버무린 비빔밥을 먹은 기분이다.
시간이 흘러가며 평소의 사고습관대로 긍정의 추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건강을 과시하며 조금은 우쭐대며 살아온 삶에 변화를 주고자 태클을 건 것이라고. 결국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 좀더 심신을 잘 챙기며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준 선물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아가 큰 병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고마움이 몰려왔다.
겨울내내 메말라 있던 나무에 화사한 봄꽃들이 향연을 펼친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신록예찬이 절로 나오는 녹빛계절이 되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변화의 길을 가는게 자연과 삶의 이치이자 원리이다. 내 몸에 통증이 왔다가 사라지는 것 또한 그 이치속에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번 통증의 경험으로 인해 얻은 것이 참 많다. 성찰하는 겸손한 삶, 건강하게 살아있는 고마움, 다시 확인한 고향의 어머니를 비롯한 쾌유를 기원해 준 수많은 인연들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