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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도영이에게 쓰는 가을편지

안녕, 도영아!

너는 나를 잘 모를거야. 하지만 나는 네가 누군지 알고 있어. 야구에 관심없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겠지만 혜성처럼 등장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도영아! 니땜시 살어야(도니살)’를 절로 나오게 하니 어찌 너를 모르겠니.


너는 득점 1위, 장타율 1위, 3루타 1위, 홈런 2위, 타율 3위,최다안타 3위, 출루율 3위, 타점 6위, 도루 6위등 타격 전 분야 상위 기록에 더하여 최연소 30(홈런)-30(도루), 월간 10-10에 이어 네추럴 사이클링 히트(순서대로 안타-2루타-3루타-홈런)까지,한마디로 최고의 활약을 했다.


이제 막 20살이 지난 나이에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새로 썼으니 2024년은 ‘김도영의 해’라는 것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니.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한국 야구 역사상 국내타자 첫 40-40을 눈앞에서 놓친 것이겠지.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너도 내심 바랐을거야.


나도 많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왜 그러냐고?


너에겐 조금 어려운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옛말에 인생에는 세가지 불행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소년등과일불행(少年登科一不幸)이란다.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고 왜 불행이라 했을까. 그것은 먼저 같은 또래랑 다른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기에 공감과 소통능력에 있어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거야. 또한 교만하고 자신도 모르게 타인을 무시하는 안하무인적인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거기에 ‘내가 해냈다’는 자기확신이 강해 유연하고 너그러운 삶의 소중한 자산과 거리가 멀어지고, 변화가 빠른 세상살이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린 시절의 성공을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고, 이후 인생에 시련이 닥칠 경우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여 난관을 뚫고 나가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고.


거창한 말인 것 같지만 이것들은 삶의 이치이자 세상의 원리이기도 하단다. 채근담에 '승거목단 수적천석(繩鋸木斷 水滴穿石)이라는 말이 있다. ‘ 가느다란 먹줄에 쓸려 나무가 잘라지고, 물방울이 돌에 떨어져 구멍이 뚫린다’


가느다란 줄로 끊임없이 톱질을 하면 나무를 자를 수 있고, 작은 물방울도 끝없이 떨어지다 보면 바위도 뚫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네가 이번에 40-40을 달성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어쩌면 하늘이 너를 도와준 것인지도 몰라. 이제 시작이라고 할 너의 인생에 때론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으니까. 그리고 새로운 각오로 새롭게 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니까.


남은 홈런 2개는 한국시리즈에서 치면 된다는 이범호 감독의 말이 너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을거라 믿는다. 40-40을 이루진 못했지만 30-30도 대단한 기록이야. 올해 네가 해낸 엄청난 기록은 우레같은 박수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단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너에겐 충분히 ‘소년등과’일수 있겠지만 더 겸손한 자세로 한국프로야구를 이끌어가는 선수가 될거라 믿는다. 다가오는 가을야구에서 너의 기량을 맘껏 펼쳐 그 수확의 대미를 맛보길 바란다.


꼰대같은 아제의 장황설은 저 가을바람에 떠나보내고. 너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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