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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0년.1,000번의 편지를 써보니


매주 월요일 아침에 찾아가는 천 번의 행복편지를 썼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해졌다.


해남 미황사의 하얀눈을 뚫고 피어난 설중매, 노오란 개나리가 응봉산을 수놓는 계절에도, 녹음이 우거지고 뻐꾸기가 울어대는 고향집의 캄캄한 밤, 피워놓은 모기불에 절로 눈물이 나오는 계절에도,구절초가 피어나고 호남들판에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계절에도, 그리고 덕유산 향적봉에 새하얀 눈이 뒤덮이고 삭풍이 몰아치던 설날 즈음, 담배연기가 자욱한 고향 읍내 PC방에서도 편지는 멈춤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누군가의 노래처럼 천개의 바람이 되어 저 넓은 하늘 위를 날아 가을의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되었을까?


아니면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주고,밤에는 어둠 속에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주었을까?


왜 그랬냐구? 그냥 썼다. 숨을 쉬듯이 길을 걷듯이 그렇게 썼다. 강물이 흘러가고 바람이 불어오고 불어가듯이 그렇게 썼다. 살아있으니 편지를 쓸 수 있었다고 말하면 너무 어이없고 실없는 말이 될까?


그 사이 앳된 사내는 성숙하고 행복한 중년이 되었다. 어쨌거나 그 1,000번의 편지엔 수많은 삶의 이야기가 담겼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숱한 삶의 희노애락들이, 좌충우돌하는 세상사의 편린들이 여기저기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돌아보면 참으로 신기하고 기특하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멈춤없는 길을 걸어 왔을까? 대단한 인생인양 서로 우기며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이지만 뭐가 대수일까? 이렇게도 살아가도 되는거다.


오늘 스스로 나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자화자찬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2005년 4월 5일 식목일 아침, 내 인생의 시련의 시간, 아주 우연히 삶의 고통에 저항하며 시작된 몇 자의 끄적거림이 이렇게 1,000번까지 이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그 편지가 씨앗이 되어 ‘대한민국 행복디자이너’가 탄생하고, 행발모와 행복(휴먼북)콘서트,행복플랫폼 해피허브까지 이어지고, 더불어 행복한 공동체를 위한 끊임없는 발걸음이 계속 되고 있으니 어찌 즐겁고 행복한 삶이 아니랴.


어쨌거나 20년의 삶의 조각들이 겹겹이 쌓여 '김재은 실록'이 만들어져가고 있다. 어떤 것은 벌써 화석이 되어 층리에 갇혀 시대의 아우성을 감추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흔적 없이 떠나는 삶도 좋지만 이런 흔적 하나쯤은 남겨도 괜찮을 것 같다.


다시 '처음처럼'의 마음으로 함께 새로운 꿈을 꾼다. 그것이 무엇일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분명 그 꿈의 길에 그냥 또 그렇게 서서 끊임없이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날 벼락같이 죽음이 찾아온다 해도 그때까지 의연히 강물처럼,바람처럼 갈 길을 가고 있으리라.


이렇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삶이 참 고맙다. 건강한 심신이 참 고맙다. 가족,친구들,삶속의 좋은 인연들이 참 고맙다. 그리고 이 글을 지금 만나고 있는 모든 님들이 참 고맙다. 덕분이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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