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명동성당, 비오는날, 어반스케치,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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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구름이 깔리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비가 온다고는 했다. 하지만 무언가 홀리한 좋은 기분이 들어 성당이 한편으로 보이는 벤치에 앉아 스케치를 한다.
성당은 길게 보였지만 세로와 가로의 길이가 거의 일치할 정도로 가로 세로의 갈이가 비슷하다.
먹선으로 성당을 스케치를 하는데 비가 온다.
그림은 이제 시작인데 비가 오니 어쩔 수 없이 우산을 쓰고 스케치를 한다.
빗물이 물감에 투둑투둑 떨어져 팔레트가 물받이가 되고, 스케치북은 점점 빗물로 작은 수영장이 된다.
가지고 있는 수성 물감은 빗물에 풀어져 비와 함께 녹아버린다.
단지 먹으로 그린 앙상한 성당의 뼈대만 '먹'이란 재료의 특성으로 남아 있는다.
빗줄기가 굵어진다.
이 정도면 하늘이 나보고 스케치하지 말란 이야기 같다.
빗물을 맞으며 녹아버리는 물감으로 그려도 그림은 사라지고 진퇴양난에 빠져있다
억지웃음 같은 그림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그려야겠다 생각하고 짙푸른 어둔 물감을 작은 수영장에 풀어놓는다
비가 비를 그린다.
감정을 감정으로 표현하는 자가 될 것인가?
감정이 어떻게 보이는지 창조할 자가 될 것인가?
갑자기 화가 난다.
비에 홀딱 젖은 짐을 챙기고 빗물을 뚝뚝 흘리며 일어선다.
나에게 이런 시련은 나의 창작 의지에 구정물을 껴 붓는 기분이라 비에 젖은 스케치북처럼 다운된다.
짐을 챙기고 겨우 다섯 발자국 옮기니 비를 맞지 않은 뽀송한 처마 밑이 나타난다.
성물 판매대 앞 처마밑은 바닥도 뽀송해 천국 같은 곳이었다.
난 이 다섯 발자국 옮길 생각은 안 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 스스로에게 짜증만 내고 있었다.
성당에서 원효대사의 해골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2025, 09,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