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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예은 Oct 18. 2019

고향의 음식은 고향의 재료로

다카마쓰 우동보우 다카마쓰 본점 うどん棒高松本店

Part 1 푸드 테라피: 마음을 채우는 음식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은 대부분 자연에서 온다. 먹는 행위란 하늘과 땅, 바다에서 숨 쉬던 생명을 빼앗아 나의 삶을 유지하는 일이다. 생명의 순환인 셈이다. 그러나 도시에 살다 보면, 자연이 키운 동식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 생각해 볼 기회가 드물다. ‘먹방’과 ‘쿡방’이 미디어를 점령한 지 오래이지만, 거기에 들어간 재료를 심고, 기르고, 수확하는 과정은 모른다.

(좌) Photo by Arnaldo Aldana on Unsplash (우) Photo by Stijn te Strake on Unsplash


하지만 가가와현에서 만난 사람들은 달랐다. 고향에서 난 식자재를 고집하고, 단순하게 조리하여 본연의 맛을 즐길 줄 알았다. 그렇게 태어난 힐링 요리는 오랫동안 몸의 양분이자 마음의 위로가 되는 법이다. 첫 번째 푸드 테라피에서는 가가와현을 여행하면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치유의 맛을 소개한다.




고향의 음식은 고향의 재료로

다카마쓰 우동보우 다카마쓰 본점 うどん棒高松本店


가가와현 사람들의 우동 사랑은 참 별나다. 우동의 본고장인 가가와현에는 약 900개의 우동 집이 있는데, 이 숫자는 가가와현에 있는 편의점 수의 세 배라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면 반죽하는 법을 가르치는 우동 학교와 우동집을 탐방하는 우동 버스는 기본이고, 우동 국물이 나오는 수도꼭지, 애완견도 먹을 수 있는 우동, 뇌가 우동으로 된 캐릭터 등 때로는 기발하고 때로는 기괴한 우동에 대한 모든 것이 있다. ‘우동현’이라는 애칭이 무색하지 않다.


Udon making / www.my-kagawa.jp/en/photo


이처럼 특색 있는 문화는 영화나 책의 소재로 쓰기도 좋다. 2006년 개봉한 영화 《우동》은 가가와현의 우동 신드롬을 주제로 하며,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된 만화 《우동 나라의 황금색 털 뭉치》 역시 고향으로 돌아온 우동집 아들의 추억담을 그린다.


(좌) 영화 우동 포스터 / 다음 영화 (우) 우동 나라의 황금색 털뭉치 표지 / 리디북스


가가와현의 중심지인 다카마쓰를 배경으로 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우동을 먹는 장면이 두 번이나 나온다. 또한, 가가와현으로 우동 순례를 다녀온 작가는 『하루키의 여행법』이라는 책에서 ‘우동이라는 음식에는 뭐랄까, 인간의 지적 욕망을 마모시키는 요소가 들어있는 것 같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만큼 원초적인 쾌감에 무아지경이 되기 쉽다는 뜻일 것이다.


현지인에게 “정말 매일같이 우동을 먹나요?”라고 물으면 하나같이 “그럼요. 오늘도 먹었는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빈말이 아니다. 우동을 먹는 방법은 무수히 많으니까. 우리가 쌀밥에 여러 가지 반찬을 곁들여 먹듯이, 이곳 사람은 국물 있는 우동, 비빔 우동, 고기 우동, 튀김 우동, 미역 우동, 카레 우동 등 그때그때 원하는 방식으로 면을 소비하고 있었다.


가가와현의 주식인 우동의 역사는 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헤이안 시대(794~1185)에 당나라로 불교 유학을 다녀온 승려 ‘고보 대사’가 밀을 제분해 국수 만드는 법을 배워와 전파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예로부터 가가와현이 따뜻하고 강수량이 적어 쌀보다는 밀 재배가 쉬운 탓도 있었다. 가장 오래된 자료는 겐로쿠 시대(1688~1704)에 그려진 병풍 ‘금비라제례도(金毘羅祭礼図)’인데, 고토히라궁에서 제사를 올리는 풍경에 우동 집이 세 군데나 들어 있다. 적어도 300년 전부터 우동을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다.


금비라제례도 / www.shikoku-np.co.jp/feature/kotohira/story/35.html


우동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함이다. 면의 재료는 밀가루와 물, 소금이 전부다. 멸치와 말린 생선, 간장 등으로 맛을 낸 육수나 다양한 토핑을 곁들이기도 하지만, 중심은 결국 면이다. 특히 가가와의 옛 지명 ‘사누키(讃岐)’를 붙인 ‘사누키 우동’의 면은 두께가 두툼하고, 표면은 살아 있는 오징어처럼 매끈하며, 속은 탄력이 넘친다. 후루룩 삼켰을 때 찰랑거리며 내려가는 목 넘김이 예술이다. 아무리 맛있는 고명을 올려도 면이 어설프면 형편없는 우동이 되고, 반대로 면이 맛있으면 간장에만 찍어 먹어도 훌륭한 우동으로 친다. 현란한 테크닉도, 별다른 양념도 없이 흰 면만 덩그러니 올라간 우동 한 그릇은 무엇이든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본질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Sanuki Udon Noodles / www.my-kagawa.jp/en/photo


이처럼 중요한 우동 면을 빚는 밀가루가 대부분 호주산이라는 사실은 무척 의외다. 물론 예전에는 지역산 밀을 사용 했지만, 우동 생산에 적합하도록 개량된 호주산 ASW(Australian Standard White Wheat) 밀가루가 등장하면서 1970년대에 일본을 장악해버렸다. 면을 뽑았을 때 색이나 광택, 식감이 뛰어날 뿐 아니라 생산도 안정적이고 값도 저렴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 고향의 대표 요리를 만드는데 수입품에만 의존해선 안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가가와현에서는 1991년부터 전문가와 협력해 자체적으로 밀가루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9년 뒤, ASW보다 우수한 밀가루를 개발하는 데 처음 성공한다. 밀가루 이름은 ‘사누키의 꿈’을 뜻하는 ‘사누키노유메(讃岐の夢).’ 가가와현의 상징인 우동을 지역에서 직접 재배한 밀가루로 만들겠다는 자급자족의 정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사누키노유메는 ASW에 비해 비싸고 생산량이 적으며, 반죽하는 과정도 까다롭다는 단점이 있다. 더군다나 일반 사람은 그 미묘한 맛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다. 이렇다 보니 사누키노유메로만 면을 빚는 곳은 전국에서도 열 곳 남짓하다. 그런 뚝심 있는 가게는 과연 어떤 곳일지 알고 싶어져 ‘우동보우 다카마쓰’ 본점을 찾았다. 다카마쓰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가게에 들어가니 벽에 걸린 인증서가 눈에 띄었다.


‘이 가게를 가가와현산 밀가루 ‘사누키노유메’를 사용하여 우동의 보급과 소비 확대에 이바지하는 ‘사누키노유메를 고집하는 가게’로 인증합니다.’


주인인 소고 씨가 1982년에 문을 연 우동보우는 자리에 앉아 주문하면 종업원이 요리를 가져다주는 ‘풀 서비스’ 형태다. 면은 주문을 받은 후에 삶기 때문에 10분쯤 기다려야 한다. 가게 이름은 반죽을 밀 때 쓰는 ‘우동 봉’의 일본어로, 한 그릇의 우동도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만들겠다는 마음을 나타낸다. 의자 8개짜리인 작은 가게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60석 규모의 가게로 발전했다. 게다가 오사카 중심가인 우메다에는 아들이 운영하는 ‘우동보우 오사카 본점’도 있다. 오사카에서 일식을 배우고, 아버지 밑에서 수련한 뒤 자신만의 가게를 연 아들은 외모까지 준수해 ‘우동계의 귀공자’라고도 불린단다. 가게 정 중앙에는 오사카 직원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좌) 우동보우 외관 (우) 우동보우 내부 @fromlyen


나는 자루우동이 맛있다는 현지인의 추천을 받아 우동보우를 찾았다. 판에 올린 차가운 면을 간장 소스에 찍어 먹는 자루우동은 탱글탱글한 면발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메뉴다. 냉기를 머금은 면은 눈부실 정도로 희며, 씹으면 특유의 밀가루 향을 퍼뜨리며 요동치다, 물결처럼 넘실거리며 목구멍으로 내려간다. 고추냉이와 메추리알, 쪽파를 넣은 간장 소스에 듬뿍 찍어 단숨에 빨아들이면, 부드러우면서도 알싸한 감칠맛이 입안을 휘감고,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우동보우의 자루우동 @fromlyen


끓는 기름에서 막 건져낸 튀김도 일품이다. 세토내해산 문어 튀김과 함께 나오는 ‘다코텐우동(たこ天うどん)’이나 각종 해산물과 채소 튀김을 올린 냉우동 ‘히야텐우동(冷天うどん)’은 자연스럽게 생맥주를 부른다. 우동 한 젓가락에 튀김 한 입, 튀김 한 입에 맥주 한 모금을 더하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는 빈 그릇과 빈 잔만 남는다.


(좌) 다코텐우동 (우)히야텐우동 @fromlyen


맛과 친절한 서비스는 물론, 소란스럽지 않은 분위기 덕분에 우동보우는 내가 다카마쓰에서 지내는 동안 가장 자주 찾는 우동집이 됐다. 근처 상점가에서 일하는 상인이나 일터를 나온 회사원, 교복을 입은 학생이 주 손님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얼마나 많은 동네 사람이 이곳에서 소고 씨가 만든 우동 한 그릇을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씻었을까. 이렇게 삶과 가장 밀접한 자리에서 전통을 지키는 가게가 있었기에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동현’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사누키노유메로 빚은 반죽을 우직하게 밀고 있을 소고 씨를 생각하면,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우동보우 주방에 쌓인 우동 그릇




※ 세나북스 단행본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의 미리 보기 연재이며, 일부 글과 사진은 추가 또는 수정되었습니다. 출간된 도서는 총 21편의 에세이 및 여행 정보, 이용 팁, 추천 코스 등을 포함합니다. 가까운 오프라인 및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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