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재직했던 스타트업이 삼성 C-Lab Outside에 합격했다. 가장 큰 혜택은 양재역 근처에 있는 삼성전자 서울 R&D 캠퍼스에 사무실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도서관, 구내식당 등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어린이집은 이용 불가였다.
하루는 구내식당에서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어린 아이와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낯선 풍경의 원인을 고민해보니 삼성전자 직원이 어린이집에서 데려온 자녀와 바로 저녁을 해결하는 모습이었다. 숟가락에 밥을 가득 퍼서 입에 넣은 다음,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이야, 여기는 퇴사하고 싶어도 못 하겠네."
그 때는 아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있다. 새삼 그 시절이 떠오른 이유는 '기업 복지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쩌면 안정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출근할 때 아기를 데려와서 사내 어린이집에 맡기고, 퇴근할 때 저녁을 함께하고 집에 가는 일상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국내에서 이런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기업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 자녀를 키우는 직장인에게 매력적인 기업의 조건은 높은 연봉도 있겠지만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간적 대안을 마련해주는 게 압도적이다. 특히 사내 어린이집은 좋은 대안이다. 출산율이 떨어졌어도 여전히 좋은 어린이집이 모자른 상황에서 자녀가 지근거리에 있다는 건 큰 안심이니까.
기업 복지는 국가 복지와 단어는 같지만 목적은 다르다. 국가 복지는 기초생활수급자 및 저소득층의 삻의 기반을 끌어올려 전반적인 국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목적이 있다고 본다. 반면 기업 복지는 안정감이다. 이 안정감은 퇴사율을 낮추고, 채용에 이바지한다.
직원 한 명을 채용해서 온보딩시키고 창의성과 생산성을 다 끌어올렸는데 휙 퇴사해버리면 그 피해는 어마어마하다. 정말 좋은 기회를 만났다면 기쁘게 보내줘야겠지만 최소한 회사에 불만을 품고 도망치듯이 떠다는 상황은 막아야 하지 않겠나. 매력적인 기업 복지는 퇴사 결심을 흐리게 하고 로열티를 높인다.
인사담당자 입장에서 가장 기쁜 순간은 채용 시 우수한 인재가 많이 몰려오는 상황일 것이다. 사실 인사담당자가 쓸 수 있는 무기는 그렇게 많지 않다. 미션/비전/핵심가치는 실체가 없기에 기업이 증명하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든 영역이다. 연봉 액수는 노출할 수 없다. '우리 회사는 좋은 회사예요'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근거는 사실 복지가 전부다. 복지는 채용에 영향을 미친다.
예전에는 기업 복지의 궁극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이 일하는 거 빼고 신경 쓸게 없도록 식사, 장비, 가계 제반 비용을 들이는 기업 복지를 실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층 더 고민해본다면 성장하기 좋은 환경 또한 안정감을 준다.
기업의 복지 담당자라면 복지를 설계할 때 이 기준이 필요할 것이다. '이 복지가 구성원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이 부분만 명확하면 반은 해결이다. 그런데 왜 안정감이냐고? 인류가 스트레스를 싫어하는 이유는 생존이 위협 받는 느낌이 싫기 때문이고, 그 반대 영역에는 안정감이 있으니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정감을 좋아한다. 그렇게 진화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