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화론은 생물의 본능을 설명할 수 있기에 각광받는다. 본능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생존 본능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다양성은 생물의 생존율을 높여준다.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살인을 법으로 금하고, 굶어죽기 어려운 요즘 생존을 논하는게 시대에 안 맞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개인보다 법인(法人, juridical person)이 생존에 취약하다.
2.
그렇다면 법인의 일종인 기업이 생존율을 높이려면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볼 수 있겠다. 역으로 다양성이 없는 획일성은 생존율을 낮춘다는 주장 또한 가능할 것이다. 기업의 다양성이란 무엇일까? 그건 생각의 다양성이다.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보다는 여러 개의 방안이 있어야 비교해서 최적의 방안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문제 해결을 잘 하면 그만큼 경쟁에서 승리할 뿐만 아니라 생존까지 보장된다.이렇게 생각이 다양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다들 쉽게 동의할 것이다. 별로 반대할 이유가 없으니까.
3.
그런데 이게 내 문제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업의 다양성은 어쩌면 비효율이다. 모두의 생각이 다양하면 회의 때마다 의견이 다 다르고, 부서 간 합의가 어려우면 업무 진행이 안되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다른 동료에 대해 '나랑 안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불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더불어 이건 우리나라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토론에 정말 약하다. '다름과 갈등' 자체에 대해 스트레스가 있는지 토론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그저 안 좋은 상황으로 보고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4.
그래서 채용부터 흔히 컬처핏(Culture Fit)이라는 미명 하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모으게 된다. 컬처핏은 스타트업에서 많이 쓰는 개념이고, 컬처핏이 유행하기 전부터 대기업 계열에서는 인성검사라는 개념이 존재했다. 이름은 다르지만 활용 방식은 비슷하다. 실리콘밸리에서 유래한 컬처핏은 원래 조직이 지향하는 문화와 잘 맞는 사람을 채용하는 전략이었지만, 한국에서는 필터링으로 쓰인다. 한 마디로 한국의 인성검사와 컬처핏은 적합한 사람을 뽑기보다, 부적합한 사람을 걸러내는데 쓰이는 것이다.
5.
컬처핏을 접할 때마다 드는 의문은 세 가지다. 첫 번째, 애초에 '컬처'를 정말 가지고 있는가? 조직문화가 명문화되어 명확하게 잡힌 기업은 정말 드물다. 스타트업은 더욱 그렇다. 당신네 조직문화가 한 마디로 뭐냐고 물어보면 대답 못하는 직원들이 90% 이상일 것이다.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는, 어쩌면 허구에 가까운 조직문화에 핏한 지원자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6.
두 번쨰는 면접관의 역량에 대한 의문이다. 과연 '핏'을 판단할 수 있는 면접관이 얼마나 될까? 높은 확률로 컬처핏은 보통 2차 면접에서 실시한다. 1차에서 실무 면접을 통과하면, 2차에서 HR 담당이 나와서 컬처핏을 보는데 사실 면접이 체계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실험한 구조화 면접(Structured Interview)의 효과가 증명된지 75년이 넘었지만, 면접관이 자기 편향적으로 판단하는 관행은 그대로다. 이렇게 하면 그냥 면접관과 인간적으로 코드가 맞는 사람만 면접에 통과되게 된다.
7.
마지막으로 컬처핏 자체가 정말 기업의 생존에 도움이 되느냐다. 이렇게 핏한 사람들을 뽑아서 회사 구성원 모두가 같은 견해를 가지면 바람직할까? 회의에서 아무도 반대하지 않으면 문제가 없을까? 컬처핏이 맞는 사람만을 채용한다면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지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경쟁력은 다르게 말하면 생존이다. 생존의 기본 조건은 변화에 대한 적응이고,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가장 큰 전제조건은 바로 다양성이다. 다양한 개성이 모여야 기업의 경쟁력이 보장된다. 컬처핏은 동질성(Homogeneity)의 문제를 일으키고 무의식적 편향(Unconscious Bias)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8.
그래서인지 요즘은 컬처애드(Culture Add)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겼다. 말 그대로 '조직문화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문화에 새로운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사람을 뽑자'의 개념이다.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링크드인 탤런트 블로그, HBR에서 소개되며 컬처핏의 대안으로 확산되었고, 더 다양한 아이디어와 창의적 문제 해결, 포용적 조직문화 구축, 장기적 혁신 역량 강화의 측면에서 여러 기업들이 도입하였다.
구글(Google)
- 초창기엔 “Googley 하냐?”라는 말로 컬처핏을 강조했으나, 이후 다양성 문제로 비판받음. 최근 채용 과정에서 ‘team contribution(팀에 새로운 관점을 기여할 수 있는가)’를 강조.
넷플릭스(Netflix)
- 유명하 ‘자유와 책임’ 문화에 맞는 사람만을 뽑는 것으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 확보로 방향을 전환.
슬랙(Slack)
슬랙의 CEO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 필요 없다. 새로운 시각을 더해줄 사람을 원한다”고 강조.
9.
참고로 한국은 아직인 듯 하다. 여전히 인성검사를 통해 스크리닝만 하고 컬처핏을 통해 면접관 취향 놀음만 하고 있으니 걱정이 된다.
끝.